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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원더풀 이창호" 철의 수문장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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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원더풀 이창호" 철의 수문장이 돌아왔다

입력
2010.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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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창호는 단체전에 강했다. 농심배의 사나이 이창호가 드디어 또 한 차례 기적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순간에 구리 창하오 류싱 등 중국의 톱랭커 3명을 잇달아 물리치고 한국에 통산 아홉 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사실 3라운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이창호 홀로 적지로 날아갈 때만 해도 국내 바둑계의 예상은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이창호가 지난 10년간 농심배서 16승2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한국의 8회 우승 가운데 일곱 번을 자기 손으로 결정짓는 확실한 해결사 역할을 했지만 최근 극심한 세계 대회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렸고 불과 한 달 전에도 LG배 결승전서 콩지에에게 0대2로 패해 또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하이에 도착하면서부터 심한 편두통에 감기 기운마저 있어 동행했던 기원 관계자들이나 취재진들 모두 큰 기대를 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만 졸였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이창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0일 첫 경기서 류싱을 이긴 것까지는 대체로 예상했던 일이지만 11일 구리를 물리친 건 정말 대단했다. 이날 대국에서 이창호는 초반에 포석 난조로 잠시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으나 중반 이후 실수 없는 완벽한 반면 운영으로 확실히 승리를 굳혔다.

당시 스카이TV에서 이 대국을 생방송으로 해설하던 이세돌이 "이창호 사범의 정신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던 얘기가 혹시 연막작전이 아니었나 생각될 만큼 잘 두고 있읍니다"라며 감탄할 정도였다.

마지막 창하오와의 최종전은 더욱 쉬웠다. 사실 창하오는 원래 이창호의 '밥'이다. 그동안 32번 맞대결을 펼쳐 이창호가 22승10패로 월등히 앞섰다.

그래도 2007년 삼성화재배와 2009년 춘란배 결승전서 이창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근에 다소 강세를 보였지만 일단 가속이 붙은 이창호의 기세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대회서 막판 3연승을 거둠으로써 이창호가 11년간 농심배 본선에서 거둔 성적은 19승2패가 됐다. 승률이 90%가 넘는다. 사실 이런 성적은 정상적인 프로의 대국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더욱이 상대가 모두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기사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도저히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달 정관장배서 박지은이 막판 4연승을 거둬 우승한 데 이어 이번 농심배까지 남녀 모두 한중일 국가대항전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07년 이후 두 번째 남녀 동반 우승이다. 하지만 농심배나 정관장배 모두 이창호 박지은 두 선수의 뛰어난 활약에 크게 의존한 승리라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 남녀 모두 출전 선수 가운데 무려 세 명씩이나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중간 허리층이 약하다는 한국 바둑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오는 11월에 열릴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녀단체전에 대비해 좀더 체계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한편 이창호의 막판 대역전 우승으로 가장 덕을 본 건 박영훈 윤준상 김지석 김승재 등 동료 선수들이다. 농심배는 다른 기전과 달리 오직 우승팀에게만 상금 2억원을 지급하고 2위와 3위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 개개인이 이번 대회서 거둔 성적을 감안해 상금이 배분되겠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선수도 최소한 웬만한 국내기전 우승 상금 정도는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모두들 이창호에게 큰 절이라도 한 번 해야 할 듯 싶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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