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갈지(之)자 법정증언을 계속하면서 검찰에 비상이 걸렸다. 한명숙 전 총리의 5만달러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유일한 직접증거인 곽씨의 진술이 검찰 조사 때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도 지금까지 세 차례 공판에서 '밀렸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한 전 총리 뇌물사건 3차 공판에서 변호인은 지난해 12월10일 검찰이 작성한 곽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전격 공개했다. 이 조서에서 곽씨는 "돈 봉투를 한 총리에게 직접 준 것이냐, 다른 가구 위에 놓았냐"는 검사 질문에 "(총리공관 식당) 출입구에 서 있는 상태에서 드린 것 같다.
어디다 올려놓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돈을 건네주었다"고 대답했다. 이는 곽씨가 전날 2차 공판에서 "(총리공관) 오찬이 끝난 뒤 돈 넣은 것(봉투)을 내가 밥 먹던 자리 의자에 놓고 나왔고, 한 전 총리가 봤는지는 모른다"고 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곽씨는 이날 "검찰에서 말한 것과 법정에서 증언한 것 중 어느 게 진실인가"라고 변호인이 묻자 "법정에서 얘기한 게 맞다"고 전날 진술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면 왜 검찰조사 때 달리 말했느냐"는 질문에 곽씨는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진술번복이 아니라고 해명하던 검찰도 더 이상 할말이 없게 됐다.
검찰로선 이제 재판전략을 새로 짜야 할 형편에 놓였다. 검찰이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최소한 5만달러의 사용처를 밝혀야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일반 뇌물사건의 경우 돈이 오간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하지만 공여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을 때는 수뢰자가 돈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내면 유죄의 유력한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전 총리 주변의 환전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검찰은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은 오히려 한 전 총리 가족이 환전기록 없이 자주 외국여행을 한 점을 의심하고 있지만 이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이날 곽씨는 2002년 8월 여성부 장관시절 한 전 총리에게 998만원짜리 골프채 세트를 선물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애매하게 진술했다. 곽씨는 골프채를 사준 돈의 출처와 배달과정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골프채 사준 것도 애초에 기억에 없다가 검찰이 관련장부를 보여주며 추궁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 측은 "곽씨가 B골프백화점에서 골프채를 사주겠다고 하길래 거절하고 '성의로 받겠다'며 모자만 받았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공판과정에서 보다 자세한 사실들이 드러날 것"이라며 골프채 의혹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검찰이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재판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법원이 뇌물공여자의 진술이 세부적으로 다소 부정확해도 큰 맥락에서 일관되면 도리어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곽씨의 진술번복에도 불구하고 큰 맥락에서 돈이 '전달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앞으로 관건은 총리공관 오찬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라며 "한 전 총리가 (돈 봉투를 받은 후) 감사 전화를 했는지, 또는 곽씨와 다른 교류가 있었는지를 충분히 입증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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