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법구가 12일 다비식이 치러질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옮겨졌다. 다비식은 13일 스님의 뜻을 좇아 단순하고 검박하게 치러진다.
오전 11시 30분, 요령과 목탁 소리 뒤로 스님의 법구가 상좌들의 어깨 위에 들려 행지실(주지 스님의 집무공간)을 나왔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ㆍ공을 이루되 그 공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이 창건하고도 한사코 하룻밤 묵기를 거부했던 길상사에서, 스님은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나왔다.
상좌들은 유지를 지켜 관을 짜지 않았고 만장을 앞세우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 행지실 초입의 시누대가 미친 듯 흔들렸는데, 그것들이 오색만장인 양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곧 눈비를 쏟아낼 듯한 표정의 하늘이 서둘러 핀 개나리로 해사하던 경내를 무겁게 눌렀다.
법구는 대나무로 짠 판 위에 올라 평소 입던 가사를 홑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천수경이나 아미타경을 염송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서가모니불'을 되뇌던 불자들은 그 염결한 앙상함 앞에 눈물을 보였다. "추우셔서 어떡하느냐"며 울먹이는 목소리들을 스치며 스님의 법구는 바삐 움직였다.
법구는 극락전 앞에서 부처님께 간단히 예를 드린 후 장의차에 올려졌다. 스님의 첫 호사일 듯한 캐딜락 리무진이었다. 이날 성북동 언덕배기는 스님을 배웅하는 불자와 시민들로 북적였다.
3,000명이라고도 하고 5,000명이라고도 했다. 길상사 측은 "스님의 뜻에 따라 방명록도 만들지 않았다. 모두 제 뜻에 따라 와서 스님을 뵙는데 숫자는 세서 무엇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11일 오전 길상사를 다녀갔다.
스님의 출가 본사인 송광사는 이날 스님의 법구를 하룻밤 안치할 문수전을 청소하고 지장전에 분향소를 차리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그것뿐, 꽃도 만장도 만들지 않고 별다른 현수막도 내걸지 않았다.
다비식 절차에 대해서도 "최대한 소박하게"라고만 되풀이해 설명했다. 다비장의 불은 13일 오전 11시에 스님이 누운 대나무 아래로 들어간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