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지음ㆍ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발행ㆍ312쪽ㆍ1만2,800원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는 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모든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체 인류의 4분의 3은 서구 식민 지배의 채찍 아래서 신음하고 있었다. 인권선언에 참여한 서양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뽑아낸 피와 눈물로 부를 쌓고 민주주의를 구가했다.
<빼앗긴 대지의 꿈> 은 서구의 이러한 태도를 '정신분열증'이라고 규탄하고, 그런 이중성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맹공을 퍼붓는다.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 때문에 여전히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남반구 22억 사람들의 뼈아픈 기억, 그로 인해 분열과 갈등에 시달리는 오늘의 세계, 동시에 서구 열강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기적처럼 되살아나는 혁명과 연대의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빼앗긴>
이 책은 남반구에 대한 서구의 침략은 끝나지 않았다고, 방법을 바꿔서 그것도 유사 이래 가장 살인적인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고발한다. 세계화된 서양자본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과 다국적기업의 힘으로 강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야말로 지난 500년간 이어져온 억압 체제 중 가장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 코트디부아르의 외무장관 울레 시엔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노예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이제 흑인들은 더 이상 노예로 끌려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 땅에서 흘린 피와 땀은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값을 매깁니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주식 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서양의 원죄를 고발하는 지은이의 성토는 격정적이다. 서구 식민 지배가 아프리카와 남미 등 남반구에 얼마나 깊고 큰 상처를 남겼으며 남반구의 오늘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뜨겁게 낱낱이 말한다. 그러나 분석은 냉철하고 희망은 굳건하다.
그는 서구의 이중성과 제국주의가 빚어낸 참상의 대표적인 현재진행형으로 나이지리아를 제시한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8위의 석유 생산국인데도 다국적기업의 횡포 탓에 만성적인 기름 부족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부패한 권력과 결탁해 이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는 희망의 증거다. 2006년 1월 남미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에보 모랄레스가 취임한 이래 볼리비아에서는 서구 제국주의에 짓눌렸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잘 사는 나라로 거듭나는 혁명이 진행 중이다. 다국적기업이 갖고 있던 석유ㆍ광산산업의 국유화, 가난과의 전쟁,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이 그것이다. 서구의 압력과 반동 세력의 저항이 거세지만, 볼리비아는 민중 연대로 이에 맞서며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은 2008년 프랑스 인권저작상 수상작이다. 지은이 장 지글러는 스위스 출신 사회학자로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오래 활동해온 행동하는 양심이다. 인도적인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 구조의 관계를 밝히는 글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대표작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와 <탐욕의 시대> 는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어 세계화의 병폐를 적시하고 인권에 눈 감는 무딘 양심을 날카롭게 찔렀다. 탐욕의> 왜>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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