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학생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수감중인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주장이 거세다. 인간의 짓 이라기에는 너무나 잔악한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배경이다. 그러나 흉악범죄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부ㆍ여당이 여론에 편승해 거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비친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어제"독방을 쓰는 흉악범 1명에게 1년에 2,000만원이 들어가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최고위원 회의에서"사형이 확정된 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범은 신속히 형을 집행하는 것이 정의와 법치주의에 맞다"고 강조했다. 이주영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도 거들었다. 반면 안 대표가 법치와 인권의 본질을 왜곡하고 포퓰리즘에 치우친 것임을 지적한 발언은 없었다.
정부도 강경론에 호응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법무부는 57명의 사형수 가운데 대상자를 선별해 사형 집행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진정성을 믿기 어렵지만, 마냥 예사롭게 들어 넘길 수 없다.
부산 사건과 유영철ㆍ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등이 안긴 충격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숱한 흉악범죄에도 불구하고 1997년 이래 사형 집행을 유보해온 국가 정책을 섣불리 바꾸는 것은 경솔한 선택이기 십상이다. 역대 정부가 사형 집행을 유보한 것은 사형제도에 관한 국내외의 인식 변화와 국가 이미지 등을 신중하게 고려한 결과이다.
한국은 이를 통해'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돼 국제사회에서 문명국가 이미지를 높였다. 그 사이 사형제도에 관한 국민적 인식과 헌법적 판단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 달 헌법재판소가 96년에 이어 다시 사형제를 합헌으로 결정하면서도 합헌 의견이 재판관 7명에서 5명으로 줄고, 보충의견 등을 통해 사형제 폐지 또는 대체 입법을 권고한 것은 상징적이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국가 형벌권 행사는 냄비에 물 끓듯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은 아주 명쾌하고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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