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어제 범인이 검거된 부산 사건에서 보듯,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잔악한 범죄에 국민이 치를 떨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는 다짐이 줄을 잇는다. 여야도 관련 범죄 예방ㆍ처벌에 더 효과적인 법률을 만들겠다고 앞을 다툰다.
그 결과 국회에는 40여 개의 아동 성범죄 관련법안이 제출돼 있다. 여당이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제출한 11개의 아동 성범죄 종합대책 관련법안 등이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들끓던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나 싶게 법안 심의에 무관심해진 여야는 다른 쟁점에 매달려 줄다리기에 바쁘다. 제대로 심의되지 못한 법안에 먼지가 쌓여갈 때쯤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 기존 법안의 강도를 더 높인 새 법안을 검토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여야의 국회 운영방식이나 의원들의 자세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목소리만으로는 공허하다. 정치쟁점이 법안 심의를 가로막도록 이끌어 온 여야 지도부, 정당의 집단의사에 맹종하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여기는 의원들의 각성이 선행해야 정치권의 논의가 적실성을 띨 수 있다.
입법의 적실성은 처벌 강도를 높인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쟁점에 국회가 통째로 발목이 잡혀 그와 무관하게 마땅히 다루어야 할 법안 심의ㆍ처리를 미루는 것도 문제지만, 늑장 입법에 대한 비난이 비등한다고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늦을수록 착실하게 논의 절차를 밟아 공통분모를 마련해 마땅하다.
여당이 어제 이른바 '전자발찌법'의 제한적 소급적용 방침을 굳혔다. 전자발찌 부착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조차 정리되지 않아 국회의 본격적 논의를 기다리는 마당에 논란 범위를 너무 넓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형벌 불소급의 원칙이나 범죄자도 무한정 예외일 수 없는 인권 관련 논란에 눈을 감을 수는 없다. 늑장 대응과 졸속 입법 사이의 좁은 길을 찾는 데 여야가 지혜를 모으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아동 성범죄 방지 법제에 구멍이 있다면 이번만큼은 메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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