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으면 주먹으로, 상대가 도망가면 발길질을 해댄다. 따귀를 때리는 것은 예사다.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조직폭력배의 일상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KBS2 TV '1박2일'과 '개그콘서트', MBC '무한도전' 등 주말 예능, 개그 프로그램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더구나 이들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많이 보고 있어 폐해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1박2일' 돌발적 폭력 자행
7일 방송된 '1박2일'은 시작부터 폭력이었다. 멤버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강호동이 느닷없이 은지원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오래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강화 교동도의 한 시장 골목에서 웃으며 놀다가 강호동이 또 주먹으로 은지원의 팔뚝을 가격했다. 놀란 은지원이 "왜 때린 거예요"라고 항의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체적인 흐름과는 상관 없이 돌발적인 폭력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강호동은 2008년 말 전남 해남 편에서도 MC몽에게 주먹을 휘둘러 폭력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개그콘서트' 왕따 조장
같은 날 방송된 '개그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박영진은 박휘순의 양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때리듯 치면서 멱살을 잡았다. 전개상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해명한다면 일단 넘어가자. 그렇다면 노우진이 등장하면서 아무 이유 없이 박휘순의 머리를 때리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박휘순이 이 코너에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소극적이고 다른 인물에게 무시당하는 캐릭터임을 감안하면 이 장면은 분명 교실 내 집단 따돌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명훈은 잘난 척하는 노우진의 뺨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네댓 번이나 때렸다.
'무한도전' 폭력에 무감각, 욕설까지
6일 '무한도전'에서는 폭력과 욕이 난무했다. 족구 경기 중 정준하가 공을 놓치자 박명수가 정준하의 뺨을 때렸다. 박명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득점을 하고 좋아하는 유재석에게 발길질을 했다. 제작진은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는 '퍽', 발길질을 하는 장면에서는 '경기장 폭력사태 발발'이라는 자막을 넣어 폭력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줬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길이 제기차기를 제안하자 정준하는 때리려는 듯 손을 올렸고, 박명수는 "미친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시청자들 짜증, 방통심의위 조사 나서
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폭력성 때문에 시청자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한 시청자는 "폭력 장면이 극의 흐름상 없어서는 안될 상황도 아닌데 청소년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낸 의도가 뭐냐"며 청소년들이 무분별한 폭력 장면을 모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청자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폭력을 쓰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고, 웃기지도 않는다"며 "약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적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세 프로그램은 모두 공영방송이 제작해 방송한 것으로 '1박2일'과 '무한도전'은 12세 이상 시청가, '개그콘서트'는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이들 프로그램의 폭력성에 대한 지적이 있어 조사 중"이라며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한 사안이 있는지 확인해 적절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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