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低에너지 주택 넘어 無에너지 주택으로
#. 2020년3월, 수도권의 한 신축아파트에 한국전력의 통지서가 배달됐다. 전기요금 고지서가 아니다. 전달 이 아파트가 풍력ㆍ태양광으로 생산해 한전에 판매한 전력량과 그에 따라 한전이 지급할 금액이 적힌 통지서였다.
#. 비슷한 시기, 서울 강남의 A아파트 관리사무소. 주민들이 "인근 B아파트는 평수도 같고 입지도 비슷한데, 우리보다 10%나 비싸다"며 대책을 논의중이다. 1시간 후 내린 결론은 단열 성능도 좋고 태양전지도 되는 '스마트 랩'을 이용한 아파트 외벽 리모델링. 입주자 대표는 "B아파트처럼 '액티브 아파트'(에너지를 생산하는 아파트)가 되어야만 집값에 프리미엄이 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가 정주(定住) 생활을 시작한 이래 고착화 되어버린 집의 개념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1만년간 에너지를 소비하고 자연계의 엔트로피(무질서도)를 높여온 집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환경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동향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1970년대부터 뛰어든 유럽이 가장 앞서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73년 오일 쇼크 이후 유럽 각국은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해, 1975년 평균 2,210유로였던 100㎡당 주택 난방비용을 90년대에는 1,000유로까지 낮췄으며, 2010년 신축 주택의 경우에는 360유로 수준까지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제로에너지 타운'을 완성했다. 런던 남부 월링턴에 조성된 '베드 제드'(BedZed). 이 곳의 주택은 최첨단 단열재와 창호 설계로 난방 수요를 기존의 10분의1 수준으로 낮추고, 태양광 및 폐목재를 활용한 열병합 발전으로 완벽한 에너지 자급을 실현했다. LG경제연구원 도은진 책임연구원은 "유럽연합(EU) 의회가 2019년부터는 모든 신축 건물이 소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토록 규정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제로 에너지주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했다.
일본도 2008년 경제산업성이 직접 나서 일본 유수의 건축, 가전업체 42개로 컨소시엄을 구성, '마이너스' 에너지 사용과 이산화탄소 무배출을 실현시킨 '제로 배출 하우스'(Zero Emission House)를 선보였고, 미국도 비슷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국내동향
출발은 늦었으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우리나라 건설업체들도 최근 이 부분에서 커다란 기술진보를 이뤄냈다.
대림산업은 2005년 용인연수원에 냉난방 비용을 30% 가량 줄인 '패시브 하우스'를 지었는데, 여기서 얻은 기술을 2008년 4월 '울산 유곡 e편한 세상'에 실제로 적용했다. 또 2012년까지 1㎡당 연간 3리터(기존 아파트는 17리터)의 등유만으로 냉난방을 해결하는 '에코 3리터 하우스'개발을 완료하는 한편, 이후에는 단순히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패시브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열, 풍력, 태양력 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액티브 하우스' 기술 개발에 돌입할 계획이다.
삼성건설은 이미 연간 에너지 수지를 플러스(+)로 맞춘 모델하우스(그린 투모로우)를 건축해 운영 중이다. 이 건물에는 ▦전기차 충전시스템 ▦옥상 녹화시스템 ▦지붕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 ▦태양열 급탕시스템 ▦지열펌프 스템 등 68가지의 친환경 기술이 적용됐다. 회사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20% 가량은 지금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며, 나머지 기술도 2015년까지는 상용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고효율 자재를 사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56% 절감하고, 나머지 44%는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해 에너지 사용량을 제로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현대건설의 노력은 '카본 프리 디자인'으로 설명된다. 온실가스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아파트 설계부터 건축ㆍ관리까지 친환경 시스템과 재료를 사용하는 개념인데, 태양광ㆍ소형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시설이 도입되고 고효율 단열재와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해 에너지 낭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게 된다.
이미 30% 이상의 에너지 절감 기술을 개발, '수원 아이파크 시티 2차'에 적용한 현대산업개발도 2015년까지는 제로 에너지 주택 개발을 마칠 계획이다.
LG경제연구원 도은진 연구원은 "경제성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현재 추세라면 2020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요금 부담에서 자유로운 주택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미래 건설업체의 경쟁력과 집값의 차이가 에너지 효율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를 10~20% 가량 절감하는 것은 창호, 단열재 사용만으로 가능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액티브 하우스'를 지으려면 독자 기술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저(低) 에너지 주택은 누구나 베낄 수 있지만, 액티브 하우스는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모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007년 미국 시애틀에서 친환경 주택의 집값이 일반주택 보다 평균 10.5% 가량 비싸게 거래된 점을 근거로, 에너지 효율이 다음 세대 집값의 주요 결정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철환 기자 chchod@hk.co.kr
■ 전문가 진단 "그린 홈에 용적률·분양가 등 인센티브 제공해야"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100%에 육박하고 그 가운데 13% 정도가 주택에서 소비된다. 게다가 2013년부터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택 부문의 에너지 효율을 시급히 높여야 한다.
흔히 '그린 홈'으로 불리는 '저(低) 에너지' 주택확산을 위해서는 민간의 연구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정책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우선 관련 부처들의 역량과 자원을 집약하여 범 부처 차원에서 보급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토해양부는 '패시브 설계' 중심의 보급 정책을, 지식경제부는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을 각각 추진하고 있는데 자원활용 등의 측면에서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세제와 정책적 측면에서 '그린 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진작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에너지 효율이 일정 수준을 넘는 주택을 분양가상한제에서 제외하거나, 용적률에서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업계의 적극적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또 DTI나 LTV 등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완화해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안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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