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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관용(寬容)이 키운 교육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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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관용(寬容)이 키운 교육비리

입력
2010.03.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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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교육계 원로와 얘기를 나눴다. 한미FTA와 교원평가 반대, 통일교육 등으로 한창 전교조가 시국의 중심에 있던 시기로 기억한다. 줄곧 개탄만 하던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맞서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 되지 않습니까? 상대적으로 소수인 그들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는데, 다수인 보수교단이나 단체는 왜 그러지 못합니까?" 그가 짧게 답했다. "부패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연초에 정부 산하기관이 연 교원 노사관계 세미나(전교조 교사가 많으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연구로 논란이 일었던 그 행사다)에서도 소개했다. "학생 학부모들이 전교조를 보는 정서는 일반 여론조사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들은 더 도덕적으로 보이는 쪽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교육계의 부패를 없애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전교조 식의 활동에 나 역시 비판적 입장임을 전제하고 한 그 날 발언의 요지다.

모두가 알고도 눈감아 주었다

교육비리로 새삼 법석을 떠는 요즘 모습은 우습고 위선적이다. 이제는 솔직해질 때가 됐다. 교육계 부패는 하도 넓고 깊어 과장하면 거의 교육환경처럼 구조화돼 있다. 학교를 다녔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 국민은 오래 전부터 아는 일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면 주변에서 숱하게 들어서라도 안다. 모든 세대가 기억하고 증언할 수 있다.

'장학사ㆍ장학관ㆍ교장ㆍ교감 등 자리마다 돈이 오간다는 얘기는 뉴스도 아니다. 보직 이동 및 승진, 교직원 채용, 근평 등과 관련한 뇌물도 공공연하다. 칠판 분필 등 소소한 학교 기자재 구입에서부터 시설공사, 행사, 시설 대여, 방과후학교 업체선정, 수학여행, 급식, 교재 채택 따위에 이르기까지 온갖 건(件)마다 떡값이 붙는다는 것도 거의 상식 수준이다.

다 차치하고라도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행복한 순간에 교사의 자질과 요구수준 따위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해가며 걱정하는 나라가 세상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찬조금이나 학급비 등 같잖은 명목으로 당당하게 손 벌리는 풍조도 어지간히 질기다. 물론 도ㆍ농간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정도면 교육계야말로 최대의 비리백화점이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우리가 자랐고, 우리의 아이들이 커가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 이제 제발 "일부 극소수로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식의 상투적 항변은 말기 바란다. 당연히 올바른 교육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니라면 교육체제 자체가 지금껏 존립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구정물에 발가락이라도 한 번쯤 담가본 교육자가 극소수는 아니라는 건 단언할 수 있다. 이건 교육계 사람들도 다 안다. 오죽하면 예전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를 결성하면서 '교육계의 부정부패 청산'을 목표로 내걸고 '촌지 거부운동'을 첫 실천방안으로 채택했을까.

대통령까지 나선 데 화들짝 놀란 당국과 정치권이 채 익지도 않은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는 모습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교장 공모에서 외부진입 장벽을 더욱 높이고, 교원평가에서도 학부모 학생 등 수요자의 개입을 극구 줄이려 애썼던 당사자들이다. 그들이 이럴 때마다 하는 말은 늘 "조직과 현장의 안정을 위해서"이다. '안정'은 기득권과 부패구조의 유지존속이란 말로 들린다.

더 이상 지킬 것 없다는 각오를

무엇보다 먼저 현실을 외면하고 대충 덮어온 관용적 태도가 교육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음을 우리 모두 자성할 일이다. 감정을 눅이지 않은 채 거칠게 현실을 질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심각한 실상을 정면으로 드러내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시작이다. 최악을 상정하지 않은 대책은 대개 표피적이고 미온적이기 십상이다. 개혁의 방향이야 다른 분야와 다를 게 없다. 교육계 전반에 '개방과 견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상과 불관용'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지키고 남길 건 아무것도 없다는 각오로 팔을 걷어붙이지 않으면 이번에도 또 일과성 호들갑으로 지나갈 것이다. 교육부패는 한 인간의 성장을 결정적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여느 범죄 이상으로 무겁다는 점부터 다들 분명하게 명심해야 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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