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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다문화 시범교육 경북 예천 성락어린이집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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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다문화 시범교육 경북 예천 성락어린이집에 가보니

입력
2010.03.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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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이 어머니의 고향인 베트남이 어디죠. 겨울에 눈이 올까요, 안 올까요. 아는 사람?"

9일 오전 경북 예천군 백전리 성락어린이집 교실에서 보육교사가 그림으로 된 세계지도를 들고 큰 소리로 묻자 고사리 손들이 쑥쑥 올라간다. 이곳은 여느 어린이집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교실은 물론 복도, 화장실까지 세계 지도와 나라별 풍습과 의상, 글자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모노와 베트남의 아오자이 등 어머니 나라의 옷을 입고 현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방도 있다.

200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다문화교육 시범 어린이집으로 지정돼 베트남과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 5개국 다문화가정 어린이 27명을 비롯, 159명이 다니는 이곳은 흡사 외국의 체험학교라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다. 이 어린이집은 학부모와 교사가 외국동화책을 읽어주고 악기도 연주하고 다문화 어린이들은 외국 전통옷을 입고 다문화 패션쇼도 한다.

베트남 어머니를 둔 남지현(7ㆍ예천군 상리면)양은 "다른 나라 엄마를 둔 친구들이 많아서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를 중국어로 '시에시에'라고 하는 것도 배웠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결혼이민자 16만7,000명, 다문화가정 자녀 10만명 시대를 맞아 20, 30년 앞을 내다본 '미래형 다문화 프로젝트'가 경북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언어와 피부색 등으로 인해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의 부적응과 소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경북에서는 이들을 우리 사회 주역으로 키워내기 위한 청사진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민으로 인해 우리말과 어머니 나라 말 등 2개 국어를 태생적으로 배우는 이들 어린이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글로벌 인재'로 키워내겠다는 발상이었다.

다문화가정 8,057곳에 6,35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경북은 이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첫 걸음으로 다문화 어린이집을 착안했다. 이래서 만들어진 게 성락어린이집이고 올해는 다문화가정 어린이 17명이 새로 들어왔다.

다문화 어린이 중 상당수는 두메산골에 살고 있어 산과 들, 농로를 헤집고 통학하는데 5시간이나 걸리지만 어린이집 생활은 마냥 즐겁다. 베트남 출신의 르엉 티 민하이(23ㆍ여ㆍ하리면)씨는 "애가 한국말도 조금 늦게 배우는 것 같고 생김새도 다르기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차별을 받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다문화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표정이 밝아졌다"고 흐뭇해했다.

성락어린이집이 다문화 교육에 앞장선 데는 김혜숙(42ㆍ여) 원장의 공이 크다. 2005년부터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된 김 원장은 지난해 계명대 대학원에서 '어린이집 생활주제와 통합적 다문화교육 프로그램 정의 및 효과 검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다문화교육 분야 국내 1호 박사다.

김 원장은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변하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계의 문화를 접하는 다문화적 경험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락어린이집이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해 말 경북에는 안동 아름어린이집과 의성 춘산어린이집 등 4곳이 다문화 어린이집으로 새로 지정됐다.

아울러 경북은 어머니 나라 말에 대한 경연대회도 열고 있다. 자녀에게 어머니 나라 말에 대한 자긍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세계화 시대에 어머니 나라 말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말 경주에서 열린 '엄마나라 말 잔치'에는 20여팀이 참가, 외국어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꼬마들은 중국어와 베트남어 등으로 동요와 동화구연을 펼쳤고, 초등학생 이상은 엄마나라 말로 유창하게 외가를 소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대회에서 '다문화사회, 자랑스런 우리가족이야기'를 중국어로 발표, 1등을 차지한 의성초교 신해철(11ㆍ6년)군은 "중국 하얼빈이 고향인 엄마 덕분에 대회에서 상도 탔다"며 "엄마 고향에도 빨리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발판으로 경북도는 올해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마다 '이중언어교실'을 개설, 다문화 어린이들의 잠재적인 외국어 능력개발에 나섰다. 또 결혼이민 부부를 대상으로 영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3개 국어로 된 '자녀교육용 가이드북' 3,000부를 배포했다. 물론 한국어 교육지원도 한다. 학교 및 사회적응을 위해서는 한국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방문교육지도사 332명이 다문화가정을 직접 방문, 우리말을 가르치고 구미 등 7개 다문화지원센터에서는 연령과 수준에 따라 맞춤형 언어교육을 하고 있다.

경북도는 아울러 다문화 자녀들이 커서 어머니 나라 대학도 갈 수 있도록 다문화가족지원기금 조례를 제정, 올해부터 5년간 12억원의 기금 조성에도 나섰다. 이 기금으로 유학자금에다 장학금을 지원한다. 동화 등을 통해 엄마와 아이가 자연스레 말을 배울 수 있도록 4개 언어로 된 '결혼이민자 한국생활적응시스템'(www.aic.go.kr)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결혼이주여성의 국내정착을 돕는 데서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잘 키우는 방향으로 정부의 다문화 정책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됐다"는 것이 김장주 경북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의 말이다.

대구·예천=전준호 기자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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