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직접 가봐야 제대로 알겠지만 부근에 숨어있을 거에요. 금방 잡힐 겁니다."
지난 8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소속 범죄행동분석요원(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경위는 확신에 차 있었다. 부산 여중생 이유리(13)양 납치살해사건의 현장분석을 위해 그는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갔다. 9일 밤 그는 "현장이 미로처럼 꼬여있고, 날씨도 엉망이라 장난이 아니네요"라면서도 "내일(10일) 한번 더 수색을 하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10일자 10면)가 '김길태, 생활반경 좁아 집 근처 은둔 가능성 높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대로 그의 분석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피의자 김길태의 은신처는 물론이고 검거시점까지도 정확히 가늠하고 있었던 것.
경찰이 공개 수사에 나섰고,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뒤인 만큼 김길태의 장거리 도주를 의심할 법도 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권 경위와 강은경(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위, 김해선(부산경찰청) 경장 등 프로파일러들은 김길태의 범행지역 및 수법,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분석 근거는 이랬다. 김길태는 두 번의 출소 이후에도 줄곧 집 근처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교도소 수감 중엔 사람이 많은 장소를 두려워하는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고, 출소 후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싫어한 탓에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멀리 달아날 확률이 적다는 것이었다.
사회성도 결여돼 있었다. 휴대폰도 운전면허도 없고, 인터넷도 쓰지 않는데다 도주를 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가 납치한 여성을 장시간 감금한 것은 부족한 사회성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라는 설명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프로파일러들은 김길태가 집 부근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울산 등 다른 지역에서 "김길태를 봤다"는 제보가 쏟아졌지만 경찰은 김길태의 범행장소 주변 지역을 이 잡듯 뒤졌다. 만일 수사력을 분산했다면 검거까지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프로파일러가 범인 검거에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권 경위는 2000년 2월 서울경찰청에 관련 팀이 생기면서 국내 프로파일러 1호가 됐다. 2004년 한 명이 합류했고, 2005년부터 3년간 특채를 실시해 현재 39명이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권 경위는 2006년 4월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당시 각기 다른 4건의 사건을 하나의 연쇄사건으로 결론짓고, 정씨의 자백을 끌어냈다. 2006년 11월엔 경찰청에 신설된 범죄행동분석팀으로 옮겨 전국에 주요 사건이 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갔다. 2007년 제주 양지승(9)양 살해사건, 강호순 사건 등에서도 공을 세웠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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