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나물이 봄을 먼저 알린다. 향긋한 냉이를 사와 끓는 물에 넣는 순간 냉이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해 그만 아연해졌다. 냉이의 비명이라니? 요즘 읽는 책 <식물의 정신세계> 때문이다. 식물도 감정을 지니고 있고 사람을 알아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기억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실험사례와 함께 나온다. 식물의>
다정한 말로 사랑해주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은 쑥쑥 잘 자라고, 거들떠보지 않거나 구박하면 곧 시들어 버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기쁨과 고통을 표현할 줄 안다니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지각 능력으로는 식물의 감정 표현을 느낄 수 없기에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거짓말탐지기 같은 검류계를 잎에 연결하여 전류 변화를 관찰하면 식물의 감정 변화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식물도 위스키에 취하고 나중에 숙취까지 느낀다니 신기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식물의 잎을 함부로 따거나 잔디를 밟거나 상추쌈을 먹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쩔 수 없이 식물을 먹어야 할 경우 다정한 말로 위로해 주면 식물도 그 사정을 이해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니 식물조차 먹을 수 없어 굶어 죽을 염려는 덜게 되었다. 그냥 먹는 것과 미안함을 표시하며 먹는 것, 이 차이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우 크다. 자연에 대한 근본적 태도, 즉 자연을 단순한 물질이나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 정신을 지닌 고귀한 생명체로 보는 관점이 바탕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금광을 발굴하려 자연을 마구 파헤치는 백인과 나무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기에 함부로 베지 않는 인디언의 세계관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역사와 서부영화에서는 늘 백인이 승리했지만 환경위기 시대를 맞아 인디언의 생활 방식과 자연관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현대판 서부영화 <아바타> 에서는 대체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군대와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나비족을 쫓아내려는 지구인들이 결국은 자연의 반격에 밀려 지구로 쫓겨간다. 아바타>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나비족이 승리하는 <아바타> 의 결말은 전지구적 기상이변이나 지진,해일의 의미를 새롭게 보게 한다. 이들 현상은 우리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 대한 자연의 경고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아바타>
그런데 걱정이다. 정부는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도처에서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불교계나 천주교, 그리고 국민 다수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젖줄"인 4대강을 죽이는 공사가 한창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조차 인간의 기술우월주의를 비판하며 생명중심 사고로의 전환을 촉구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개발제일주의와 토목국가 이데올로기에 빠져 4대강을 난도질하고 있다.
작은 잎사귀 하나 뜯겨도 식물은 비명을 지르는데 지금 4대강을 휘젓는 포크레인의 거대한 삽 날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인가. 숱한 생명의 고통 소리가 한반도 가득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아바타> 의 결말처럼 자연이 들고일어나 우리를 한반도에서 쫓아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4대강 죽이기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자연 속에 세 들어 사는 것이다. 그러니 늘 그래왔듯 4대강은 자연스레 흘러야 한다. 아바타>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