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조지 클루니)은 1년 322일을 출장으로 보낸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그에게는 비행기와 호텔이 집이자 사무실이고 놀이터다. 그의 직업은 해고 전문가. 오래도록 동고동락한 직원들에게 "그만두셔야 된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사업주들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의 상사는 "소매업 지수가 20% 떨어지고 자동차산업은 불황이다. 우리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한다. 라이언은 불황일수록 호황을 맞이하는 역설의 직업을 가진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가족에 대한 환상도 없다. 여자를 만나도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일 뿐이다. 인생의 목표도 딱히 없다. 항공 마일리지 1,000만 포인트 도달이 유일한 가시적 목표다. 그저 자신의 지혜로운 해고 통보가 그나마 해직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직업적 사명감에 만족하며 산다. 유명 강사이기도 한 그가 대중에게 전하는 말도 "당신의 여행가방을 최대한 비워라"이다. 삶의 행장을 가볍게 할수록 쿨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라이언의 인생에도 변화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신과 꼭 닮은 인생관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 알렉스(베라 파미가)와 신출내기 직원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그의 삶을 밑동부터 흔들어놓는다. 경비 절감을 위해 인터넷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나탈리에게 품위있는 해고 통보 방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는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의 마음에 들어앉은 알렉스도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결혼이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가벼운 터치로 인생의 묵직한 의미를 되짚는 영화다. 주로 하늘에 떠 있던 한 남자가 삶이라는 지상에 착지하는 과정을 신선한 연출로 그린다. 주인공들이 치고받는 감칠맛 나는 대사와 재치있는 상황 설정이 흥미롭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알렉스의 진정한 모습도 반전의 묘미를 던진다. 해고자가 양산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잿빛 현실을 놓치지 않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라이언에게 상사는 말한다. "애 좀 먹을 거야. 요즘 엄청 잘리고 있거든." 한 중년 남자의 정신적 성장담을 휴먼스토리로 전하면서 미국의 경제위기도 적시하는, 이 영화만의 미덕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2007년 10대 미혼모를 소재로 한 '주노'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제이슨 라이트먼이 연출했다. 그는 '고스트 버스터즈' 등을 만든 유명 감독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다. 원제 'Up In The Air'.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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