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예언자'를 보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유명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영화 흥행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요즘,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지 채 1년도 안돼 국내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티켓 사기를 주저하진 마시라. 고리타분한 교훈을 지루한 화법으로 담아 고독한 작가주의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니까. 범죄영화의 전설 '대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를 치밀한 만듦새로 연출해낸다. 더구나 이 영화, 현 프랑스 사회에 대한 풍부한 비유까지 담고 있다. 프랑스 사회 밑바닥의 변화를 가늠하고, 인종 문제에 대한 그들의 고민을 엿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라. 오락적 재미와 예술적 쾌감을 즐길 수 있는 데다 사회적 의미까지 얻어낼 수 있는 영화라면 금상첨화 아닌가.
영화는 아랍계 19세 청년 말리크(타하 라임)의 '감옥풍운'을 다룬다. 경찰을 폭행한 죄로 6년 형을 선고 받고 처음 감옥에 간 그에게 철창 안 세계는 낯설기 그지없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에게, 간수들까지 매수해 감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인물인 코르시카계 죄수들의 우두머리 세자르(닐스 아르스트럽)가 협박을 한다. 말리크에게 호감을 보인 다른 아랍계 죄수 레예브를 살해하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겠다는 것. 말리크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코르시카인의 개'라는 아랍계 죄수들의 이죽거림 속에서도 세자르의 부하로 감옥 생활을 이겨나간다.
말리크에게 감옥은 학교나 다름없다. 세자르를 통해 범죄의 기술과 담대함을 배워가면서 그는 읽기와 쓰기도 깨우친다. 범죄 세계의 이치를 깨달은 그는 세자르를 넘어서기 위한 자신만의 계획을 하나 둘 진행시켜 나간다. 외출을 나가 세자르가 지시한 특별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신만의 마약 거래 사업을 시작하고 조직을 만들어간다.
말리크가 종국에 암흑가의 새 거물로 탄생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프랑스에서 이등 국민 취급을 받으며 지하세계를 움켜쥐었던 코르시카계의 어두운 권력이 아랍계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폐쇄적 공간인 감옥에서 벌어지는 여러 범죄 장면이 진저리쳐지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권력의 향배에 따른 죄수들의 이합집산 등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한 심리 묘사도 빼어나다. 리듬감 있는 전개로 154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말리크의 대담한 행동은 이 뛰어난 범죄영화에 성장영화의 면모를 가미한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당초 대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이 점쳐졌을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외국어영화 작품상, 런던영화제 대상, 유럽영화제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을 받았다. 감독은 자크 오디야드. '영웅 알베르'(1996)와 '내 심장을 건너 뛴 박동'(2005) 등으로 세계 영화계의 눈길을 끈 감독이다. 영화 팬을 자부한다면 기억해둬야 할 이름이다. 1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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