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의 절반이 학교에 가지 못해 글을 모르고, 수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성여아 살해율이 높아 남성 1,000명당 여성비율이 933명에 불과한 국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도의 이면이다. 인도는 지난해 세계 134개국 중 여성평등지수가 114위에 불과했다. 이런 인도에 괄목할만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도 상원은 9일 연방 및 지방의회 의원정수의 33%를 여성으로 의무화하는 할당제 법안을 통과했다. 법안이 발의된 지 14년 만이다. 하원 심의가 남아있지만 통과가 확실시 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만모한 싱 총리는 “인도 여성해방의 역사적인 걸음”이라고 칭하고 “인도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찬성 186표, 반대 1표로 가결됐지만, 반대파는 투표에 불참했다. 심의과정에서 의사진행방해로 정회가 반복됐고 7명의 의원이 징계를 받았다. 반대파들은 법안복사본을 찢고 종이조각을 의장에게 던지기도 했다.
라시트리야 주나타달당 당수는 “우리는 부당하게 ‘반-여성’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항변했다. 여성할당제는 좋지만, 그 여성들이 각 소외 계급과 지역, 종교를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 할당제가 아내와 딸을 앞세워 의원직을 더 차지하려는 기득권층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카스트제도 등 복잡한 계급구조를 가진 인도가 안고 있는 고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부 소수정당들은 국민회의당 중심의 집권 연정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 정치적 불씨를 남겨놓고 있다.
그럼에도 법안 통과는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엔은 각국에 여성의원 비율을 30%로 높이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세계 평균은 18.8%에 불과하다. 한국은 14.7%, 인도는 10.8%다.
여성의원 비율이 높은 상위 30% 국가 중 80% 이상이 법적으로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한 국가다. 전통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이 높은 비율을 보여왔으나, 르완다, 아르헨티나 등에서 여성할당제를 적극 도입하며 제3세계 국가들 상당수가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약 90개 국가가 법으로 여성의원 할당제를 정하고 있으며, 이중 30개국은 후보자의 30~40%를 여성으로 하도록 강제화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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