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가는 주부 황미래(가명)씨가 외출 준비를 위해 안방 드레스룸 옷장 거울 앞에 선다. 드레스룸에 걸린 옷들이, 실제 옷 입고 있는 모습으로 하나 둘 거울에 비춰진다. 오늘 황씨의 선택은 화사한 봄날에 맞게 이 '매직 미러'가 추천한 노란색 반코트. 하트 모양의 백금 귀걸이도 매직 미러가 추천한 오늘의 패션 소품이다.
집 앞에서 놀겠다던 꼬마 녀석이 2시간이 다 되도록 들어오질 않는다. 다급해진 엄마가 거실 홈 네트워크 단말기로 다가가 입주자 위치 확인 버튼을 누른다. 잠시 후 단지 내 CCTV가 아이의 위치를 찾아 모니터에 띄워준다. 아이가 갖고 있던 스마트 키를 단지 내 설치된 위치인식 시스템이 파악해 해당 가구에 알려준 것이다.
스마트 홈 시대 열리다
상상 속의 집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열지 않아도 보여주고, 나가보지 않아도 알려주고, 고민하지 않아도 선택해준다. 단순 거주 공간에 머물던 종래의 '수동적' 주택 개념은 사라지고, 이젠 인간과 주거 공간이 상호 소통을 하는 '쌍방향'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력은 역시 첨단 정보통신(IT) 기술.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집 자체가 두뇌(지능)를 갖게 된다. 휴대폰에 '스마트 폰' 시대가 열렸다면, 주택에는 '스마트 홈'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10년 후 미래주택의 진화 방향을 전망하며, 그 가운데 스마트 홈이 향후 주거 시장의 핵심 트렌드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 동안 국내 주택기술의 진보가 외관과 평면, 설계 등 하드웨어에 걸친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진화는 첨단 과학ㆍIT기술이 융합되는 주택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될 것이란 예측이다.
생활의 파트너
스마트 홈 기술은 이미 부분적으로 국내 건설업체들에 의해 개발되고, 실제 주택건축에도 채택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IT 융합 보안시스템 ▦주차위치와 상태를 체크해주는 유비쿼터스 주차시스템 ▦스마트키 비상콜 ▦생활정보제공 및 건강점검 매직 미러 시스템 ▦실시간 에너지 사용량을 모니터링해주는 '에너지 클락' 등을 통해 스마트홈을 구현하고 있다. 예컨대 거실에 설치된 '플로어 스크린'은 주차장과 놀이터를 모니터하는 기능 외에도 동사무소와 경찰서 등 공공기관과도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어, 집에서 민원서류를 발급받거나 위급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주차위치 정보시스템이나 유비쿼터스 자동인식 시스템 같은 기술은 이미 분양을 마친 단지에도 일부 적용이 됐고, 또 앞으로도 적용해나갈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비상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단지 내에서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개인 스마트카드에 내장된 비상버튼을 누르면 관제실에 통보된다. 이어 위치관제시스템과 연동해 CCTV가 해당위치로 움직여 모니터링 하고 가족들에게 긴급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준다. 스마트 키를 가진 입주자가 엘리베이터로 접근하면 자동으로 승강기 버튼이 눌려지고, 탑승하면 입주하는 층에 자동으로 멈추는 입주자 인식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주인과 소통하다
주인을 알아보는 것도 스마트 홈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기술. 대우건설이 개발한 '바이오 라이팅' 시스템은 입주자의 정서불안이나 우울감 등을 조명으로 치료하는 '라이팅 테라피'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사례다. 거주자의 심리상태와 바이오 리듬에 맞춰, 최적화된 실내 조명 환경을 만들어준다.
현대산업개발 기술연구소는 에너지 절감 기기인 대기전력차단시스템(HEMS) 상용모델을 개발했다. 방과 화장실, 부엌 등 각 실내 공간마다 설치된 제어기가 실내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정밀센서로 감지해 사람이 없으면 자동 소등과 난방 외출모드 등이 자동으로 전환되고 입주민의 귀가 또는 움직임이 감지되면 대기전력 차단이 해제돼, 전원공급이 재개되는 시스템이다.
삼성물산의 '매직 미러'는 입주자를 위한 생활정보를 알려주고 날씨 기후 등에 맞춰 의상까지 추천하는 '코디'역할도 마다 않는다. 또 욕실 세면대 거울에 설치된 매직 미러는 입주자의 혈압과 체온 등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점검해 주는 홈 닥터로도 손색이 없다.
GS건설이 서울 서교동에 마련한 '그린스마트 자이홍보관'에는 냉장고를 열어보지 않아도 보관 음식물 상황과 유통기한까지 알려주는 첨단 냉장고와, 세탁물 오염 정도에 따라 세제량을 자동 조절해주는 스마트 세탁기 등이 준비돼 눈길을 끈다. 입주자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추천 음식과 요리법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주방도 머지 않아 찾아올 현실이다.
무궁무진한 진화
스마트 홈의 진화엔 끝이 없지만 문제는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현실에 있다. 예컨대 2005년부터 기반이 마련된 유비쿼터스 원격 진료 기술도 지난해 환자ㆍ의사간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기 전까지는 무용지물이었다. 또 상당수 기술들이 공사비 상승 요인으로 이어지는 만큼, 쉽게 도입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임충희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은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ITㆍ유비쿼터스를 융합한 첨단 주택기술이 도입되고 있지만 분양가 상한제 등 제도적 여건 등으로 실제 시공에 도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며 "만약 이런 제한이 없어지고 더 많은, 무궁무진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미래에는 인간과 같이 생각하는 주택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안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주택상품의 경쟁 패러다임은 골조와 외형 등의 하드웨어분야에서 성능 중심의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타 업종과의 공동 연구개발을 적극 추진해 융합기술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 전문가 진단/ IT융합 건설 대세 미래 시장 선도를
정보통신(IT)기술은 우리 생활 패턴과 문화에는 물론 건설산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 기술의 일부에 국한됐던 IT기술은 이제 건설 상품 자체의 성격을 좌우하는 주요 기술로 인정될 정도로 건설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가치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홈네트워크나 유비쿼터스 도시(U-시티) 설계,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등 건설 사업과 연계된 IT 기술은 종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건축물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녹색 바람 역시 건설상품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여기에도 IT는 필수불가결한 기술로 사용된다. 과거 전통적인 건설상품들이 IT와 융합을 하며 똑똑해지고(스마트), 친환경적인(그린) 건축물로 진화하는데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건설상품들이 IT융합 신기술에 의해 주도되면서, 건설업계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건축방식을 따를 필요가 생겼다는 점이다. IT융합 건설상품은 굴뚝산업의 전형인 건설과 첨단기술의 총아인 IT 와의 만남으로 태어나는 상품인 탓에, 기존 건축과 관련된 '하드웨어'적인 기술 외에 IT 분야의 세부 콘텐츠와 기술까지 이해하고 접목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업의 전폭적인 이해와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건축시장은 IT기술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IT융합 건설상품이 건설시장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건설업계는 전통적인 사업체계와 건축방식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IT융합상품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새로운 비즈니스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 기술경쟁에서 도태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김우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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