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거대한 괴물로 보는 무대가 잇달아 펼쳐진다. 고전 텍스트에 근거한 이들 무대는 21세기 디지털 문명 사회에서도 삶의 고뇌와 불가해함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극단 물결의 '밑바닥에서'는 숨막히는 공동주택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삶의 희망을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그린 러시아 작가 막심 고르키의 사실주의 희곡을 신체의 움직임과 언어로 표출한 작품이다.
전문적인 신체 훈련을 받은 13명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몸짓은 절제된 대사와 어울려, 무용극이나 마임이 도달하지 못한 표현의 경지를 보여준다. 연극과 무용의 만남을 통해 도달한 제 3의 표현법을 확인할 무대다. 연출 송현옥, 안무 이영찬, 출연 송하영 신서진 등.1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02)3668-0007
극단 미추의 '변신'은 카프카가 쓴 동명의 소설이 텍스트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한 남자의 비극을 따라간다. 회사에 늦는 그를 찾기 위해 직장 상사가 오고, 벌레로 변한 그 모습에 혼비백산한다. 돈이 아쉬워 하숙을 치던 가족들은 그 때문에 하숙생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다. 결국 제발 사라져 달라는 가족들의 애원에 그는 죽음의 길을 택하고, 가족들을 비로소 평화로운 삶을 꿈꾼다. 벌레는 이 시대 가장들일지 모른다.
이번 무대는 사실주의의 길을 택했다. 영화처럼 기괴한 분장을 시도한 일부 워크숍 공연들과 가장 큰 차이다. 연출자 박홍근은 "인간이 벌레처럼 돼 가는 상황에 무게를 둬, 분장 등 시각 효과에 의존하지 않는다"며 "사회의 억압으로 찌들어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배우들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정태화, 양수연 등 이 극단 배우들의 무르익은 앙상블이 빛난다. 11~19일 게릴라극장. (02)747-5161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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