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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입술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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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입술의 문자

입력
2010.03.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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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주름으로

결별한 이름을 기록하는 시간

산발한 걸인이 되어

우리는 머리칼이 끌고 가는 바람의 문자를 해독했던 것이다

살갗과 살갗이 스쳐 만든 인장(印章)은 문자가 없는 페이지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마침내 바닥에 목을 누인

기린의 긴 혀처럼

우리는 서로의 경전을 천천히 쓸어내렸던 것이다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수면에 얼굴을 묻고

입술이 뿔 나팔이 될 때까지

머나먼 이름을 향해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물살을 문 입가에 되돌아와 겹쳐지는

입술의 무늬

우리는 각자의 입술을 만지며 붉게 물들었던 것이다

●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느라고 주름이 잡힐 입술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네요. 세상의 모든 무늬라는 건 그렇게 새겨지는 게 아닐까요. 바람이 불면 호수로 나가보기로 해요. 거기 호숫가에 앉아서 물의 무늬를 한 번 해독해보죠. 달이 밝은 밤이 되면 뒷산에 올라가서 떠가는 구름들의 형태를 살펴보도록 하죠. 그건 또 무슨 의미인지.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손바닥을 빤히 들여다보기도 해요. 용한 점쟁이도 아니고 관상쟁이도 아니지만, 그냥 그런 흉내를 내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딱히 뭘 알아내서 좋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잠깐이나마 멈춰 설 수 있어서. 사랑은 딱히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산책길이나 마찬가지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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