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를 포기한게 아니라 비전을 선택한 것"
“부모님의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죠. 가족회의만 한 달 동안 수 십 번은 한 것 같아요.”
공부 잘 하고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우등생이었던 최주찬(16)군은 지난해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인문계고에 진학해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마이스터고인 광주자동화설비고에 입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평소 조용한 성격에 성적도 높았던 터라(전교 10등 내외)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반면 최 군의 생각은 분명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마이스터고는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로봇에 대한 적성과 흥미를 이끌어냈고, 이런 학교라면 비전을 갖고 질 높은 교육을 받아 사회에 꼭 필요한 기능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휴대폰도 뜯어보고 컴퓨터도 고쳐보고 하면서 막연하게 키웠던 꿈이 또렷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최 군의 아버지는 아직 우리나라는 기능인이 제대로 평가 받는 환경이 아니라며 마이스터고 진학을 말렸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과거 고교생 시절 경험을 아들에게 털어놨다. 최 군의 아버지는 고교시절 지역 인재들이 한데 모이는 유명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대부분 친구들이 결국 단순 공장 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에 절망해야 했다. 그때 아버지는 다시 독학으로 어렵게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중학교 교사가 됐다는 것이다. 최 군은 “아버지는 마이스터고가 예전 공고처럼 한 때 유행하고 시간이 지나면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흐지부지될지 모른다며 걱정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군의 의지는 더 강했다. 최 군은 부모님께 “마이스터고에 진학해 전국기능경기대회와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좋은 기업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설명하며 설득했다. 또 “왜 대학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길에 도전하냐”며 말리던 친구들에게도 “미래에는 학력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최 군의 우상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게이츠와 애플컴퓨터를 창업한 스티브잡스다. 두 사람 모두 환경과 학력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꿈을 향해 도전했기 때문이다. 최군은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갈 것”이라며 “CTO의 꿈을 꼭 이루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이스터고인 전남 광양 한국항만물류고에 입학한 김승환(17)군은 동기들보다 한 살이 많다. 김 군은 지난해 인문계 고교 1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올해 마이스터고에 다시 입학했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해 대학에 진학하고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을 꿈꾸는 평범한 미래보단 비전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대부분 학교를 그만뒀다고 하면 학교 생활에 문제가 많았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김 군은 사실 모범생이었다. 학급 부회장을 맡았고 전체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수업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하며 질문도 많아서 교사들의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그 때문에 김 군이 학교를 그만두고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물론 과목 담당 선생님, 중학교 담임 선생님까지 나서서 말렸다. 김 군은 “‘왜 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할 결심까지 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공부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꿈을 찾아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군이 이 학교에 오기까지 한 가지 장애물이 더 있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그 지역에서만 학교를 다녔던 터라 갑자기 전남 지역 학교를 가려고 하니 겁이 덜컥 났다. 평소 지역감정의 논란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부터 입학식 이후 지금까지 겪어본 ‘전라도 친구들’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아이들’이라는 게 김 군의 생각이다. 김 군은 “버스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인데 오해 때문에 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꿈을 찾아 다소 먼 길을 돌아 온 만큼 김 군의 태도는 남다르다. 입학 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도 땄고 관련 실무과정 수업을 찾아 다니며 빈틈없는 방학을 보냈다. 그 덕분에 학교에서 입학 전에 실시한 진단평가에서는 1등을 차지하며 수석입학생이 됐다. 입학식에서 학교 대표로 선발되는 등 김 군은 벌써부터 학교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김 군은 마이스터 1기라는 이름에 책임감이 무겁다고 했다. 자신들의 성패에 따라 마이스터고의 성패가 평가되는 만큼 반드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또 무역과 물류 업종에 종사하게 된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유라고 했다. “무역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며 일하는 거니까 외국인들은 제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리겠죠. 그러니까 국익을 위해 더 잘해야죠.”
광주ㆍ광양=강희경 기자 kstar@hk.co.kr
■ 마이스터고가 성공하려면…
지난 2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21개 마이스터고가 본격 출발함에 따라, 마이스터고 성공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제언들이 나오고 있다. 학력보다 실력이 앞서는 사회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부터 마이스터고 출신 학생들의 진로확보 요구까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 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마이스터고의 성공의 열쇠로 ▦실력으로 평가 받는 사회로의 변화, ▦이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을 거론했다. 고교를 졸업한 유능한 기능인이 사회, 경제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우선될 때 현재의 전문계 특성화 고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입시기관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탈피할 수 있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학력 실업문제와 인력수급체계 왜곡현상도 근본적 치료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와 함께 마이스터고는 졸업 후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능인을 길러내는 과정인 만큼 졸업생들의 진로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최성창 합덕제철고 교장은 "학생들에게 졸업 후 산업현장에서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과 공부를 더하고 싶은 학생은 연구ㆍ개발 전문인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코스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산업체와의 협력문제, 전문계 고교생들의 군복무 문제, 우수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 쏠림 현상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국제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는 "연구ㆍ개발전문 인력이 되려는 학생들에게는 대학진학을 수월하게 돕는 것보다 자격증 제도 등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졸업 후에는 산업현장에 바로 채용될 수 있게 군 입대 연기와 같은 미온적 정책보다는 병역특례제도 같은 적극적인 정책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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