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기자라는 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다. 도제제도 형태로 취재의 비법(?)이 전수되던 시기, 경찰서를 출입하던 선배들의 충고는 한결같았다. "경찰서 주변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녀라"는 것이었다. 그곳엔 언제나 특종이 있었다. 미담(美談)기사 많은 곳이 경찰서 주변이었으며, 억울한 사연이 제일 많이 드러나는 일도 거기서 시작됐다. 경찰이라는 조직은 일반인이 실감하는 가장 가까운 공권력이다.
국민에 대한 애정부족이 문제
그러다 보니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이 욕을 먹는 대상 가운데 하나가 그곳이다(물론 부동의 1위는 아직까지 정치권이겠지만). 이번에 부산 여학생 실종 살해사건도 예외가 아니어서 경찰에 대한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경우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비난을 뒤집어 쓰는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피해자 주변의 눈물과 안타까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 마음이 첫째며, 다음은 경찰이라는 기본적 조직이 스스로 기본 활동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국민 생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면, 수사의 ABC를 조금만 지켰다면 이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지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누가 보아도 발생부터 '성폭행, 유인ㆍ납치, 살해ㆍ시신 유기'의 정황이 뚜렷했다. 실종 3일만에 경찰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후의 수사는 사실상 범인이 은닉했을 시신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피해 여학생 주변에 관심을 쏟았던 해당 경찰관들이 '범인 검거'에 소홀했던 이유는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할 여지도 있다.
공개수사 열흘이 지나고 경찰이 연인원 2만 명과 헬기와 경찰견까지 동원해 피해 학생의 집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이상한 가출이나 의도적 유괴'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가족들은 '생존의 확신'에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시신이 발견된 곳이 이웃집에 놓인 사용하지 않는 정화조 물탱크였다. 그것도 높이가 맨땅에서 불과 1.2m로 골목 옆에 버젓이 놓여 있었으니 그것은 수색에 나선 경찰들이 딱 보기 좋은 위치와 높이에 있었던 게 아닌가.
사건 현장의 주변에서 지하실, 쓰레기통, 정화조 물탱크 등은 범행에 사용된 조그만 도구라도 숨겨놓을 것으로 여겨 우선적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은 기본이다. 뒤늦게 경찰이 "범인이 시신을 은닉해 두어서 발견이 늦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경찰서 현관에 갖다 놓아야 수사가 된다는 말인가. 용의자(이제는 피의자)를 쉽게 검거할 수 있었던 기회를 몇 차례씩 놓친 것이야 '사후약방문'이라 여겨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성폭행 전과자나 상습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일이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늦어졌기 때문이라거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조치를 소급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일고 있는 것도 유감이다. 사건을 일찌감치 성폭행 관련으로 추정해놓고 유사한 범죄로 11년이나 실형을 살았던 피의자가 동네에 활보하고 있는데도 그를 찾아가 질문(?)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니 설사 전자발찌라고 효과가 있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스스로 각성하는 노력이 먼저
대통령이 나서 검거를 재촉하자 전국 경찰이 갑호 비상령을 발동하고, 유사한 전과자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전자발찌를 채우자고 호들갑이다. 이러한 호들갑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나 범인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경찰이 각성하는 일이다.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강제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첨단 수사기법이 활용되고 직원들에 대한 사기가 높아지면서 깜짝 놀랄 만한 범행수법이라 해도 성실한 경관들의 노력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욕만 먹는 경찰이라는 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가던 강도강간 피의자를 수배자 전단을 본 눈썰미만으로 검거한 경관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눈물을 찾아내고 이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자세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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