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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7> 평가와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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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7> 평가와 배움

입력
2010.03.1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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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정말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지만 정작 노력에 비해 소득은 형편없다. 더 많이 공부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왜 헛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게 되는지 알아보자.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배움’이 아니라 ‘평가’가 전부가 돼버린 ‘한국적 상황’이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초등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을 보인 학생이 점점 공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결국 하위권으로 추락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부진했지만 갈수록 열심히 노력해서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성적 역전의 주인공이 된 사례가 있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으로 중간에 운동을 포기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희망하는 대학과 전공에 무난히 합격한 경우도 있다. 이들 사례를 분석해보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 깊은 공통점이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체감한 경우에는 공부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처음 사례처럼 무조건 좋은 성적을 받아야 자신에 대한 주변의 좋은 평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받게 되면 결국 공부로부터 도망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영재 또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부진의 늪으로 깊이 빠져버려 헤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배움이 아니라 평가인 것처럼 보인다.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말하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배움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느냐는 관점은 사라지고 평가를 통해 얼마나 앞서 가느냐 만이 지배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하지만 정말 역설적이게도 평가에 매몰되지 않고 배움의 즐거움을 간직한 채 공부하는 학생들이 월등히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왜 그럴까?

시험에 대한 부담과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학생은 아무도 없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가열되는 입시 경쟁 때문에 부담과 압박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도태당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하는 공부는 동물적이다. 온갖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학습 효과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정말 저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기 싫은 막노동을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평가가 아닌 배움을 중시하는 공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부가 된다.

인간적이다. 재미있는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가 이제는 예외적인 것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면 왜 시험과 성적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우리 교육이 변질되어 가는 것일까? 배움보다는 평가에 모든 것을 거는 상황의 원인은 무엇인가? 치유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만약 학생 개인의 자질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결과는 절망적이다.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원래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속성을 강력하게 발전시켜왔다. 우리의 일상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학창시절에 누구나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공부에 몰입한 결과 아무런 의식도 느끼지 못하다가 문득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해 했던 적 말이다. 그때 시험에 대한 부담과 성적에 대한 압박이 느껴졌던가? 아니면 그저 뭔가를 배우는 과정에 집중했다는 느낌으로 충만했던가?

시험에 대한 부담과 성적에 대한 압박은 자녀를 책상에 앉게 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학습 효과 측면에서 보면 저질 공부를 낳게 하는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공부를 배움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태도는 자녀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죽일 뿐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배움의 의미는 거의 살리지 못한 채 시험 잘 보기 준비만을 한 학생들의 처절한 실패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지금은 죽어 있지만 그들에게 어린 시절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시절에는 활발하게 움직였을 공부 본능을 자극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학부모들이 먼저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좋은 평가 결과, 우수한 성적만을 욕심내면 대부분의 공부가 낭비된다. ‘학습효율화지수’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핀란드에서는 중학교 과정까지 성적을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을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성적을 의식한 공부는 낭비를 초래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고부동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배움의 소중함을 회복하자. 우리의 잘못된 교육풍토에 가세해 시험과 성적으로 자녀를 압박하는 일부터 자제해야 한다. 시험 결과에 초연하면 길이 보인다. 시험범위보다는 개인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배우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 학교에서 배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정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시험 성적의 우열보다는 배움을 통한 자기 성장에 관심을 갖도록 배려하자. 시험에 た첩맨?내용보다는 궁금해 하는 내용을 우선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하자.

마음을 비워야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을 공부의 목적으로 삼게 해준다면 지금의 공부 낭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노력하는 과정에 대한 칭찬은 학습의욕을 강하게 촉진하는 효과가 있지만 좋은 성적에 대한 칭찬은 자칫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 시험을 잘 보면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하는데 이것도 정말 치명적일 수 있다. 좋은 성적만 받으면 된다는 태도를 갖게 하면 생각보다 공부가 어려워져 좋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워지며, 공부를 회피하게 만든다. 실패한 결과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학창시절에 영어공부를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서 써먹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라.

다음 문장을 한번 큰 목소리로 다 같이 외쳐봤으면 한다. “평가를 위한 공부는 허약하지만, 배움을 위한 공부는 강력하다.”

박재원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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