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1986년 등단했던 성석제(50ㆍ사진)씨가 소설가 직함을 얻은 것은 1994년 원고지 20매 내외의 엽편소설 64편을 모은 책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를 내면서부터다. 작가 스스로는 "딱히 소설을 쓴다는 의식 없이, 써놨던 시 중 산문적인 것을 골라 짧은 산문으로 다시 쓴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설명한 이 책은 해학과 풍자, 현실과 허구를 무시로 넘나드는 서사, 기벽을 지닌 인물 등 성석제 소설의 개성을 압축적으로 예고했다. 성씨는 이후에도 <재미나는 인생> (1997),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2003) 등 엽편소설집을 내며 간결하고 밀도 높은 서사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짧은 소설' 하면 바로 성석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게 한 책들이다. 번쩍하는> 재미나는> 그곳에는>
성씨가 다시금 49편의 짧은 이야기를 묶어 낸 <인간적이다> (하늘연못 발행)는 그의 네 번째 엽편소설집이자 열두 번째 소설집이다. 뭇사람의 입을 거치며 다소 과장 섞인 채로, 친구들과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들어봄직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담뱃가게 노인 앞에서 캉캉 춤을 추며 담뱃값을 깎는 재수생들('깎아줘요'), 꿈에 그리던 중형 오토바이를 구입한 기쁨에 취해 거스름돈으로 받은 지폐 다발을 흩날리며 질주하는 중년 직장인('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 전진 기어가 망가진 고물 자동차를 후진으로 몰아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괴짜 신부님('한다면 한다') 등 조금 기이하지만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책 제목대로 '인간적인' 일화의 주인공들이다. 인간적이다>
성씨는 농담처럼 가벼운 이야기 속에,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감동과 통찰을 슬쩍 담아놓는다. 나이 들어서도 사업을 벌인답시고 자식들 속을 썩이던 아버지가 '메눌악아 설날 옷해 입어라'라고 비뚜름히 적어 며느리에게 전하는 돈봉투('부자의 사업'), 폐자전거 공장을 '지상에서 소용을 다한 자전거들이 조용히 누워 영원으로 환원되기를 기다리는 자전거 무덤'에 빗대는 애틋함 같은 것에 독자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재담꾼과 가만히 이심전심하게 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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