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되리 지음ㆍ조경수 옮김/북스코프 발행ㆍ380쪽ㆍ1만5,000원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 얀이 아이들, 가족, 지인들과 몰래 주고받은 500여통의 편지를 엮어 그의 삶을 추적한 가슴 아픈 책이다. 그의 외손자인 독일 잡지 '슈피겔'의 부편집장이 상처를 헤집기를 꺼리는 가족들을 설득해서 직접 썼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릴리 얀이 1943년 9월 브라이테나우의 노동교정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맏딸은 열네 살, 막내는 겨우 두 살이었다. 이혼이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같은 의사이면서 유대인이 아니었던 남편이 나치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내를 버린 것이다.
갇힌 엄마와 남겨진 아이들 사이에 오간 편지는 간절한 그리움으로 구구절절 애틋하기만 하다. 수용소에서 그는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면서 버텼다. 잘 있는지,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 옷은 몸에 잘 맞는지, 무슨 책을 봤는지 편지로 일일이 묻고 챙겼다. 아이들도 크고 작은 일상을 엄마에게 빠짐없이 써보냈다. 걱정말라고, 얼른 돌아오라고, 꼭 돌아가겠다고 수없이 되풀이한 위로와 다짐은, 그러나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1944년 3월 릴리 얀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됐고, 그 해 10월 가족들은 그의 사망통지서를 받았다.
홀로코스트는 야만적인 비극이었다. 그것이 삶과 사람다움을 어떻게 짓밟았고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이 책은 생생하게 전한다. 감정을 절제한 채 써서 더 감동적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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