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8일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 2시간 동안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한 전 총리는 미리 준비한 원고지 20장 분량의 모두진술서에서 "이 재판은 내 살아온 삶 전체를 심판 받는 것"이라며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검찰에서 곽 전 사장을 만났을 때 그가 검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며 검찰 수사를 표적수사로 규정했다. 변호인 측은 "총리공관에서 곽 전 사장이 갑자기 들이미는 돈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당시 사의를 밝힌 정세균 산자부 장관에게 인사청탁을 한다는 것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의 모두진술이 끝나자 서울중앙지검 권오성 특수2부장은 곧바로 발언권을 얻어 "한 전 총리는 이 사건을 마치 의도적인 표적수사인 것처럼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공기업 청탁과 관련된 뇌물수수 사건일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권 부장검사는 "대한통운 부외자금 수사 중 우연히 한 전 총리에 관한 진술이 나와 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5만달러의 행방에 대해 "한 전 총리가 수십 차례 해외에 나가면서도 환전 거래를 한 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해외여행이나 아들의 미국 보스턴 어학연수 경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압박했다.
재판시작 15분 전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한 한 전 총리는 "제가 살아온 인생을 걸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심경을 밝히고 법정으로 향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동행했으며, 두 사람 손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 한 송이씩이 들려 있었다.
한 전 총리는 특유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색 코트에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한 전 총리 측은 당초 총리 공관에서 문제의 오찬 당시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오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곽 전 사장이 주장한 것과 달리 돈을 찔러 넣어 줄 주머니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정치적 '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반 정장 차림을 바꿨다"고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공동대책위원회 양정철 대변인이 말했다.
다음 재판은 11일 열려 곽 전 사장 부부에 대한 심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22일에는 삼청동 총리공관에 대한 현장검증이 진행되며, 26일에는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동석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나와 증언하게 된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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