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부터 구상해 이듬해 초고를 썼으니, 4년 넘게 걸려 완성했네요. 그동안 해왔던 소설의 방식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쓰고자 했습니다. 마치고 나니까 내가 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소설가 한강(40)씨가 네 번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1994년 등단 이래 3권의 장편과 단편집 2권을 내면서 단단하고도 시적인 문체, 인간 내면의 상처와 욕망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호평 받아온 한씨는 이번 작품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원고지 500매였던 초고를 대폭 늘려 2007~2008년 계간지에 작품 중반부까지 연재했고, 재차 새로 쓰는 과정을 거쳐 1,600매 분량으로 완성했다. 바람이>
4년여의 긴 집필 기간은 작가에게 '새로운 소설'을 추구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한동안 소설이라는 것 자체를 견디기 어려웠다. 심지어 '나는' '그녀는'으로 시작되는 문장만 봐도 고통스러웠고, 보르헤스 같이 소설의 형식을 깨는 소설만 괴로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마친 뒤엔 어떤 소설을 쓰고 읽어도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소설과 화해한 것 같다."
과연 이번 장편은 한씨의 굳은 각오와 노고에 화답한다. 30대 후반의 주인공 이정희가 각별한 친구이자 촉망받는 화가였던 서인주의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성과 속이 갈마드는 생의 비의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의 추리소설이자, 미술과 천체물리학에 대한 깊은 공부가 담긴 지적 소설이기도 하다. 한씨는 예전처럼 표현을 절제하는 대신 풍부하게 살리는 문체로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바짝 좁힌다. 특히 이탤릭체를 사용, 등장인물의 내면의 격정을 독백 형식으로 작품 곳곳에 삽입한 형식 실험도 눈에 띈다.
이정희는 한 미술잡지에서 대학 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인 강석원이 쓴 서인주 1주기 특집 기사를 읽고 분노한다. 미시령 절벽에서 추락한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모는 데다가, 그녀가 죽음에 이끌려 그렸던 미공개작이랍시고 그녀의 죽은 외삼촌의 그림을 버젓이 게재했기 때문. 항의차 석원을 만난 정희는 인주를 자살한 천재 화가로 포장한 평전을 출간하려는 그의 계획에 더욱 분노하지만, 잡지 속 그림이 짐작과 달리 실제 인주가 그린 것이란 사실엔 당혹감을 느낀다.
정희는 석원에 맞서 인주의 생애와 죽음을 진실하게 서술한 평전을 쓸 것을 결심한다. 그 핵심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는 두터운 크레용 덧칠로 어둡고 강렬한 그림을 그리던 인주가 먹을 입힌 화선지에 종이죽을 얹어 그 번짐으로 추상화를 제작하던 삼촌의 기법을 모방했는가 하는 것, 둘째는 홀로 어린 아들을 기르며 늘 강인하게 살아왔던 인주는 왜 그날 밤 폭설이 내리는 미시령에 갔는가 하는 것이다.
인주의 전 남편, 가까웠던 조각가, 그녀의 그림을 전시한 화랑, 자살한 인주 어머니의 옛 연인을 찾아다니며 정희는 절박하게 묻지만 두 질문에 대한 답은 끝내 얻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되뇐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다만 인주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며 거기엔 석원이 연루돼 있음을 밝혀내지만, 그 대가로 만신창이가 돼서 화염에 휩싸인 인주의 화실에 홀로 남겨진다.
한씨는 당초 작품 제목을 '먹과 피'로 정했다. 먹은 성(聖)이고 피는 속(俗)이다. 한때 물리학도였던 인주 외삼촌이 조카의 친구이자 연인인 정희에게 가르쳐준 우주의 기원과 질서, 그가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그렸던 먹그림이 먹의 영역이라면 인주와 정희가 겪은 신산한 가족사와 결혼 생활, 인주가 절망의 힘으로 그렸던 크레용 그림은 피의 영역이다. 한씨는 "우리를 감동시키고 전율케 하는 성스러운 것과 만신창이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 사이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존재가 인간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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