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미티 슐래스 지음ㆍ위선주 옮김/리더스북 발행ㆍ648쪽ㆍ2만7,000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은 미국을 대공황의 수렁에서 건진 위업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뉴딜 사업을 대표하는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는 미국에서도 가장 낙후한 이 지역에 댐을 건설해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을 일으킨 기적으로 칭송받았다. 세계적 금융 위기와 함께 출발한 현 오바마 행정부도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붓는 경기부양책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딜은 경제를 살리는 묘책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주도해서 성공시킨 경제개발계획이 뉴딜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더 널리 퍼졌다. 현 정권은 '녹색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4대강 살리기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바로 전 노무현 정권은 수도 이전을 '한국형 뉴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애미티 슐래스가 쓴 <잊혀진 사람> 은 그런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뉴딜 때문에 오히려 공황이 길어지고 더 나빠졌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경기 침체를 정부의 재정 지출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민간 부문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TVA도 실패 사례라고 지적한다. 대공황이 터진 1929년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로 1,0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전선으로 향하면서 실업이 순식간에 사라진, 즉 대공황이 끝나버린 1940년까지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면밀히 추적해 뉴딜의 폐해를 밝힌다. 잊혀진>
이 책은 1937년 뉴욕에서 있었던 17세 소년의 자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실직했고, 집은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급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소년은 죽음을 선택했다. 지은이는 이 사건을 뉴딜의 실패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제시한다. 그때는 재선에 성공한 루즈벨트의 두 번째 임기 2년차, 하지만 뉴딜의 약발은 사라지고 부작용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책 제목으로 쓰인 '잊혀진 사람들'은 대공황이 시작되기 약 50년 전, 예일대 철학 교수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가 당시 진보주의자들의 논리에 맞서 자유주의를 옹호하려고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A가 부당하게 고통 받는 X를 보고 B와 대화를 나눈다. 둘은 X를 도울 법을 만들자고 한다. 그런데 이 법은 항상 C로 하여금 X를 돕게 한다. 이때 C는 잊혀진 사람이다,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절대 고려받지 못하는.
루즈벨트는 '경제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잊혀진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잊혀진 사람은 섬너의 그것과 달랐다. 섬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평범한 시민을 가리켰지만, 루즈벨트는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뜻했다. 지은이는 뉴딜은 '루즈벨트 버전'에 필요한 비용을 '섬너 버전'의 사람들이 대도록 함으로써 두 집단 사이에 반목을 일으켜 사회를 분열시켰다며, 대공황기에 진짜 잊혀진 사람은 후자(섬너 버전)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큰 정부에 반대하며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시각에서 씌어졌다. 그러나 결코 편협하지 않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충실한 편이다. 법학자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책에 붙인 해제에서 이렇게 썼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민'은 묵묵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원래의 '잊혀진 사람'이라는 점 역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책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늘어놓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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