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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렘브란트의 웃음-문광훈의 예술론' 덧없는 삶을 예술로 초월한 이 웃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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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렘브란트의 웃음-문광훈의 예술론' 덧없는 삶을 예술로 초월한 이 웃음을 보라!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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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 지음/한길사 발행ㆍ419쪽ㆍ2만원

지은이는 독문학 전공자다. 하지만 20년 이상 시와 소설뿐 아니라 미술, 음악, 건축 등 여러 예술세계를 탐닉해왔다. 그의 관심은 개별 작품이나 장르보다 예술 일반의 의미와 속성, 방향, 그리고 예술이 삶에 던지는 의미를 묻는 데 있다. "예술은 인간을, 사회를 변모시킨다"고 믿는 그는 "매순간 다르게 느끼게 하고 매일매일 생활을 쇄신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에 대한 성찰은 삶에 대한 성찰이자 자기반성이다.

<렘브란트의 웃음_문광훈의 예술론> 은 예술과 삶에 대한 그 오랜 질문과 탐색을 담아낸 책이다. 미술, 음악, 문학을 포괄하는 묵직한 예술 에세이 10편을 묶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남미 소설가 마르케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와 렘브란트, 동시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 고대 중국 사상가 장자와 시인 도연명, 한국 현대 작가 이상 김현승 최인훈, 사진작가 강운구,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철학자 메를로 퐁티와 푸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와 최북 등 동서고금의 예술적 성취와 논의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예술론을 펼친다.

이 책은 주관적이다. 지은이는 '나'를 주어로 세운 문장들로 쉼없이 내면 독백과 자기 성찰을 이어간다. 그동안 예술과 미학 책을 몇 권 쓴 그가 책 제목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것도 일종의 선언이자 다짐처럼 보인다.

그는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오늘날 예술을 말하는 것은 '콜레라의 시대에 사랑을 얘기하는 것과 같이' 힘겨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이처럼 비예술적인 시대에 예술을 옹호하는 것은 '예술은 구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구원을 향한 그의 갈망은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덧없음에 대한 어둡고 통절한 자각에서 나온다. 그는 예술에서 영원을 본다. 더 나아가 영원에 대한 집착마저 벗어던진 완전한 평화와 물아일체의 조화를 읽는다. 렘브란트 말년의 그림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이 좋은 예이다. 제욱시스는 가장 완벽한 미의 전형을 그렸다는 고대 그리스 화가다. 그림 속의 제욱시스, 곧 렘브란트는 신산한 삶의 흔적이 비치는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다. 모든 덧없는 것에 작별을 고하는 듯한 그 웃음에서 지은이는 늙은 화가가 던지는 질문을 듣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느냐, 네 삶은 어디로 가느냐"는. 이 책은 장자의 마른 나무와 타버린 재 이야기,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언급하며 예술론을 마침으로써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한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모든 문장이 시적이기를 지향한다"는 지은이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더러 지나치게 관념적이어서 혼곤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헐거워서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현실 비판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진지하고 품격 높은 에세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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