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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 강국 코리아] <1> 왜 세계 무대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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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 강국 코리아] <1> 왜 세계 무대로 가야 하나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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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성장동력의 '묘약' 글로벌 신약 개발에 있다

지난해 불어 닥친 신종인플루엔자 공포는 국내 의약 산업의 영세성과 보건 주권의 소중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였다. 국민 건강 증진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의약 경쟁력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국내ㆍ외 의약 산업의 현 주소와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1983년 당시 이병철 회장이 도쿄(東京) 선언을 통해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규모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었고, 기술력 역시 걸음마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런 도전 정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의약 산업이다.

2008년 한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169억달러(약 19조4,300억원). 신종플루 치료제(타미플루) 제조 업체인 스위스 로슈의 한 해 매출 규모다. 신약 개발보다는 다국적 기업 약을 본뜬 복제약 생산에만 의존하는 영세 제약 업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이 뒷전이다 보니 의약품 분야의 무역 적자는 갈수록 눈덩이다. 2004년 15억3,700만달러였던 적자는 4년 만인 20008년 29억3,000만달러로 급증했다. 고령화로 엄청난 약을 소비하면서도 건강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몇몇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의약 전쟁에서 이미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 국내 바이오 제약 업체 셀트리온은 대규모 투자가 진가를 발휘하면서 허셉틴(유방암 치료제)을 20여개국에 예약 판매하고 있고, LG생명과학은 매출의 20% 이상을 신약 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전 세계 의약 산업 규모는 7,730억달러(2008년 기준). 반도체 시장의 10배다. 투자 효과도 월등하다. 당국이 적극적인 이유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약품 수출을 올해 10대 과제로 선정했다. 지식경제부는 우수한 바이오 의약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품질관리기준(GMP)를 강화하고 있다. 김강립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세계 의약 시장은 한계에 도달한 화학합성물질에서 바이오 제품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이 과도기에 과감한 투자와 연구 개발(R & D)이 뒷받침된다면 국내 의약 분야가 국민 건강과 성장 동력을 동시에 책임지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바이오 의약 시장 무한팽창중… 낙오땐 국가미래 '시름시름'

세계 최대 제약 기업인 미국 화이자는 한 해 매출이 451억달러(약 51조8,600억원)에 이른다. 조선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작년 매출액은 21조원. 딱 두 배다. 연간 연구 개발(R & D)에만 매출액의 17%인 76억달러(약 8조7,400억원)를 쓴다. 작년 현대건설 매출액(9조2,0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한국에서는 이미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탄생했지만 유독 의약 산업에서는 내놓을 만한 기업들이 없다. 그간 제조업 분야에서는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 육성책을 내놓았고, 기업도 수익을 좇아 투자를 확대했지만 의약 분야에서는 여전히 뒷받침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의약 산업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전 세계적인 부의 증가와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의약품 수요가 많아지면서 의약 산업 시장은 2004년 5,400억달러에서 2007년 7,700억달러로 커졌고, 2020년에는 1조3,000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세포나 단백질 등을 배양한 뒤 여기서 약효 성분을 추출ㆍ정제해 만드는 바이오 의약 분야는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 세계적 연구 기관들이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 기업들이 너도나도 바이오 의약 시장을 선점하려고 뛰어드는 이유다. 이미 화이자는 바이오텍을 인수했고, 신종인플루엔자 치료제 업체인 로슈는 바이오 암 치료제를 만드는 제네텍을 47억달러에 사들였다.

합성 신약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기업들이 바이오 의약 기업들을 인수하는 이유는 세계 시장의 판도 변화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예측한 대로 화학합성물질을 이용해 만드는 합성 신약은 거의 포화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97년 개발된 최초 합성 의약품인 아스피린 이래 화학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화학식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치료제는 대부분 개발됐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실제로 세계 10대 의약품 항목에서 차지하던 합성 의약품 개수는 2000년 절대 다수인 9개에서 2008년에는 절반으로 줄었고, 2014년에는 고작 3개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바이오 의약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8년 1,080억달러에서 2015년에는 2,000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곧바로 바이오 의약 산업에 뛰어들 수는 없다. 이정석 식품의약품안정청 바이오생약국장은 "바이오 시장은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 업체들이 오랜 기간 R & D를 통해 자리를 잡고 있다"며 "특히 이미 특허로 등록된 바이오 의약품이 많아 후발 주자인 한국 제약 업체들이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대규모 투자 비용이 문제다. 일반 합성 신약도 그렇지만 적어도 10년 이상 R & D에 몰두해야 한다. 많으면 1조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동아제약 한미약품 녹십자 등 국내 대형 기업들도 주저하는 이유다.

하지만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과 유사한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게 보건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바이오시밀러란 바이오 신약을 베낀다는 점에서 제네릭과 같지만 생물체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라 원조 신약과 효능 면에서 똑같지 않다. 오히려 잘만 만들면 더 효능이 뛰어나 바이오베터 의약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바이오시밀러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바이오 신약은 대부분 특허 상태였기 때문에 그간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이후부터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는 것이 많다.

김현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바이오 산업은 10년 앞으로 내다보고 선진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뛰어 넘기 전략이 필요하다"며 "그간 바이오 분야에서의 축적된 생산 역량을 활용한다면 우리에게 맞은 가장 유망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이오 의약품이란

주로 햄스터와 같은 포유류에서 떼낸 세포에 특정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 등을 투입해 엄격히 통제된 연구 시설에서 배양한 뒤 이 중 치료에 쓰일 수 있는 물질을 추출ㆍ정제해 만드는 생물 의약품. 개발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유방암 대장암 당뇨병 관절염 등에 치료 효과가 탁월해 고가로 팔린다

▦바이오시밀러란

합성 신약의 복제약(제네릭)과 같은 개념으로 바이오 신약의 제조 공정을 동일하게 따른다는 점에서 제네릭과 유사하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생물 의약품의 특성상 제조 환경에 따라 바이오 신약과 조금씩 다른 효능을 갖기 때문에 '유사하다'(Similar)는 뜻을 붙여 바이오시밀러로 부른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바이오시밀러 넘어 바이오베터로

바이오 의약품 중에서도 신약과 동일한 제조 공정을 밟아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시장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를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특허를 받는 바이오 신약과 거의 동일한 효능을 발휘하면서도 가격은 절반 정도까지 낮출 수 있어 제대로만 개발된다면 수요가 크게 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컨대 세계 최대 바이오 제약 기업인 제네텍이 개발한 유방암 항암제인 허셉틴을 투여받는 환자에 들어가는 연간 치료비는 무려 3,6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허셉틴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최대 1,800만원 정도에 환자에게 공급될 수 있다. 이런 가격이 가능한 건 특허 신약에 비해 개발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통상 많게는 1조원 정도의 연구 개발(R & D) 비용이 들어가는 바이오 신약에 비해 바이어시밀러는 개발 비용을 최대 1,000억원까지, 임상시험을 포함한 제품 생산 기간도 절반 수준인 5년 정도로 줄일 수 있다.

물론 바이오시밀러 개발 비용의 절대적 규모가 작은 건 아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신약 개발과 달리 바이오시밀러의 특성상 자체 기술과 자본만 어느 정도 축적돼 있으면 빠른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의약 산업 육성과 약값 인하 차원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 승인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의약품은 일반 소비 제품과 달리 다른 나라에서 검증됐다고 해서 곧바로 수입해 쓰지 않는다. 자국민들의 임상적 특성 등을 감안해 자국에 맞는 검증 절차를 두고, 그 틀에 합격한 의약품만을 시판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바이오시밀러 심사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2005년에 마련해 외국 기업들의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대형 오리지널 제약사들의 로비에 밀려 주춤했던 미국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을 위해 가이드라인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이정석 식품의약품안전청 바이오생약국장은 "합성 의약품의 경우 신약과 복제약이 사실상 포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가격이 싼 바이오시밀러를 포함한 바이오 의약품은 생명과학 발달과 함께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기수기자

■ 구글 꿈꾸는 글로벌 제약사들

1980년대 중반 합성 신약의 복제약을 집중 개발하며 급성장한 이스라엘 제약 업체 테바는 의약계의 구글이다. 복제약 생산으로 출발했지만 이 과정에서 개발 역량을 강화해 2003년 세계 25위로 올라섰고 2008년에는 18위(매출액 111억달러ㆍ약 12조원)의 세계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복제약에 강한 국내 제약 업계가 매출액의 20% 이상을 의약품 거래와 관련한 리베이트로 쏟아 붓는 사이 테바와 같은 강소 기업들은 연구 개발(R & D)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테바는 작년부터는 바이오 제약 생산 기업인 스위스 론자와 합작 투자 기업을 설립해 바이오시밀러 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의약 정책에서 한국과 유사한 길을 걸어 힘이 떨어져 있는 일본 제약 업체들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빠르게 눈을 돌리고 있다. 아스카제약는 불임 치료에 사용되는 바이오시밀러의 임상시험에 착수해 2012년 허가 신청을 목표로 상품화를 추진 중이다.

김민성 전국경제인연합회 미래산업팀 연구원은 "바이오 의약 분야는 보건 주권 측면뿐 아니라 산업 측면에서도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며 "각국 정부의 약값 인하 노력과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바이오시밀러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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