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에서는 항상 드라마틱한 승부가 연출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북한은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서독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통일 조국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 신화를 이뤄내며 전세계에 '붉은 악마' 열풍을 몰고 왔다.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의 예비 주인공들을 '사니보나니(Sanibonani) 남아공'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다. '사니보나니'는 남아공 공용어 가운데 하나인 줄루족 말로 '안녕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칭은 '무적 함대(Armas Invencible)'다. 스페인이 해상 무역의 강자로 군림하던 16세기 후반 필리페 2세가 편성한 대규모 함대의 이름이다. 그러나'무적 함대'는 1588년 나선 영국 원정에서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해군에 참패, '세계 정복'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스페인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가 이와 다르지 않다. 화려한 멤버 구성으로 매번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허무하게 무너지곤 했다. 축구강국 중 월드컵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성적을 그친 나라로 꼽힌다.
불운 뒤에는 지역 갈등이 있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 빠짐없이 본선에 진출했고 자국에서 개최한 1982년 대회 이후 늘 우승 후보로 꼽혀왔지만 단 한 차례도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국 리그에 수 많은 슈퍼 스타를 배출했음을 고려할 때 불운이나 징크스 탓 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스페인의 월드컵 부진 배경에는 극심한 지역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가장 지역색이 강한 나라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이라는 테두리로 묶여 있지만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은 '자치구' 같은 성격을 지닌다. 언어마저 다른 이들은 스페인의 주류 세력인 카스티야 지방과 차별화를 주장하며 꾸준히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 사회적 배경은 축구 대표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첨예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레알 마드리드(카스티야), FC 바르셀로나(카탈루냐), 레알 소시에다드(바스크) 선수들이 한솥밥을 먹는 대표팀이 응집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표팀보다는 지역 클럽의 성적에 더욱 관심을 쏟는 스페인의 축구 풍토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유럽 제패로 달라진 무적함대
스페인의 월드컵 실패가 불운 탓이 아님은 유럽선수권에서도 번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특히 우승 후보로 꼽혔던 2004년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2008년 유럽선수권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70대의 노장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만에 스페인 대표팀을 환골탈태시켰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그친 아라고네스 감독은 '클럽 이기주의'를 배격하고 팀워크를 단단히 하는데 주력했다. 유럽 정상에 오르는 동안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어떤 불협화음도 나지 않았다.
유럽 정상을 정복하며 단합된 힘을 과시한 스페인 축구는 이후'무적 함대'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남아공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10전 전승(승점 30)으로 역대 월드컵 최다 승점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6월 남아공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미국에 뜻 밖의 패배(0-2)를 당했지만 이후 9연승을 거두며 세계 최강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은 남아공월드컵 H조에서 스위스, 온두라스, 칠레와 맞붙는다. 역대 대회 중 가장 무난한 조 편성이라는 평이다. 막강 전력에 더해 운까지 따라주는 듯 하다.
스페인은 월드컵 우승 경험 없이 FIFA 랭킹 1위에 오른 유일한 팀이다. 남아공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명실상부한 '무적 함대'의 전성기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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