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와 관련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세계 최고의 품질’로 칭송받던 도요타자동차를 생각하면 갑작스러운 느낌도 지울 수 없는데요. 누구는 오랫동안 쌓여온 고질병이 이번 사태로 터져나온 것이라 하고 누구는 일본 자동차의 독주를 시기한 미국 측의 음모라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오늘은 잘 나가던 도요타의 대형사고 원인과 교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A. 도요타 리콜 사태가 뭔가요?
우선 개략적인 사태의 내용을 정리해 보죠. 지난해 가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도요타 리콜(회수 후 무상 수리)은 올 들어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으로 확대되면서 전 세계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리콜 차종도 캠리, 코롤라 등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던 주력 차종뿐 아니라, 아발론, 툰드라, 라브4 등 갖가지 차종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요타가 친환경 하이브리드카로 자랑하던 프리우스도 제동장치 결함으로 리콜 대상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도요타의 리콜은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세계 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리콜이 실시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요타가 리콜 대상으로 발표한 자동차는 800만대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도요타의 전 세계 판매대수(약 700만대)를 훨씬 넘는 수준입니다. 리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도요타의 손실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요. 도요타가 자체 추산한 것만으로도 리콜 비용과 판매 감소로 인한 피해가 현재까지 약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추락한 소비자 신뢰와 이미지 실추에 따른 간접적 피해까지 감안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왜 터진 거죠?
리콜 사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발생한 교통 사망사고였습니다. 가속 페달 결함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다급한 음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동안 안전성과 품질로 인정받아왔던 도요타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도요타의 대응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도요타는 가속 페달 부품의 결함을 미국 현지 부품 협력사(CTS사)의 책임으로만 돌린 채 오히려 미국 의회한 로비를 통해 사태를 무마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책임 회피에만 몰두한 안일한 대처가 미국 소비자의 불신과 대량 리콜을 자초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요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건가요
오랫동안 일본 제조업의 대명사로서 세계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을 정도로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던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에는 여러 요인이 지적되고 있는데요. 가장 큰 원인은 무리한 글로벌 시장 확장의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도요타는 2000년대 이후 적극적인 글로벌 확장 전략을 추진하면서 해외 공장과 협력사들을 급속히 늘려가게 됩니다. 도요타의 2000년 해외 생산량은 175만대로 전체 생산량의 약 34%에 불과했으나 2008년에는 420만대로 전체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기에 이릅니다.(그래픽 참조)
그 과정에서 해외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품질관리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글로벌 생산 체제가 가속화되면서 해외 공장과 협력사에 대해서까지 일본에서처럼 ‘모노즈쿠리’ 정신(풀어읽는 키워드 참조)이나 카이젠(改善)으로 일컬어지는 ‘도요타 생산 방식’(TPSㆍToyota Production System)을 적용하기가 힘들어지게 되었고 결국 품질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는 얘기지요.
또 하나 지적되는 것은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고도 할 수 있는 ‘대기업병’입니다. 급속한 글로벌 확장 전략으로 도요타는 2007년 마침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등극하게 되는데요. 결국 세계 최고 기업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오만이 방심을 불렀다는 지적입니다.
해외 현지생산이 늘어나고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도요타도 상하좌우 간의 의사소통에 장벽이 생기고 조직의 유연성과 민첩성이 결여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번 사태의 경우도 소비자 불만이 늘어나고 이를 우려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궁극적으로 문제를 더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량 리콜사태로 최대 위기에 빠졌지만 도요타는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있으며 기술력과 품질 면에서 뛰어난 기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당분간 판매량 감소는 물론, 도요타의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도요타의 위기는 GM, 포드 등 미국의 경쟁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하려는 국내 자동차기업에게는 기회 요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도요타의 노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경쟁사들의 반사 이익은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히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요타의 경쟁력이 더욱 강해진다면 큰 위협 요인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요타 사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도요타 리콜 사태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청문회 결과에 따라서는 법적 분쟁으로 발전할 소지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의 통상을 둘러싼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 파장이 우리나라와 중국 등 미국의 주요 교역국에도 미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도요타 사태를 둘러싼 음모론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우리 기업들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이번 도요타 위기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우리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공한 기업으로서 정상을 지키려면 현실 안주는 금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비자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위기 상황에 대비한 역량과 대응 체제를 재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기업병은 일종의 ‘성인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의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 노력과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양적 성장만이 기업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당하기에 벅찬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추구하면서 점차 역량을 키워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질적 성장이 수반되지 않는 외형 확장은 언제나 위기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 풀어읽는 키워드
노즈쿠리(物作り)란
직역하면 ‘물건 만들기’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물건 제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장인 정신을 가지고 최고의 제품 제조를 추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란
어렵게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1992년 출간한 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됐습니다. 특히 요즘엔 인수ㆍ합병(M&A)에 성공한 기업들이 이후에 어려워지는 상황에 많이 비유됩니다.
그래픽/ *그림은 화상
◆도요타의 국내외 생산량 및 해외 판매량 추이
자료: 도요타 홈페이지
현대경제연구원 허만율 연구위원
■ 세계 자동차회사 순위 지각변동
'도요타 사태'는 세계 자동차 판매시장의 구도까지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부동의 1등'이던 도요타가 주춤하는 사이, 미국과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판매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포드는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14만2,006대를 판매해 도요타를 제치고 12년 만에 월간 판매 1위에 올랐습니다. 포드는 진작부터 인기가 높은 소형차 생산을 확대하고 재규어, 랜드로버 등 수익이 저조한 브랜드를 매각하는 구조조정에 성공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제너럴모터스(GM)도 비록 포드에 밀리긴 했지만 2월 판매량이 1년 전보다 11.5%나 증가한 14만1,535대를 기록했습니다. GM은 도요타의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출고된 차량 구매자에게 60개월 무이자라는 파격적인 마케팅까지 펼치고 있답니다. 이에 반해, 도요타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1년 전보다 8.7% 급감한 10만27대에 그쳤죠. 특히 대표 차종인 캠리는 판매량이 20%나 줄었습니다.
일본의 다른 차와 한국 기업들도 반사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혼다는 지난달 미국내 판매량(8만671대)이 12.7% 늘었고 닛산(7만189대)과 스바루(1만8,098대)도 판매량이 각각 29.4%, 38.3% 증가했습니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합작업체인 르노닛산은 올 1,2월 판매량을 1년 전보다 23%나 늘렸습니다. 도요타의 인기 차량인 캠리, 렉서스와 고객층이 비슷한 알티마, 인피니티 등이 선전한 덕이라는 평가입니다.
한국 차들도 선전하고 있습니다. 올 1월부터 시판에 들어간 기아차의 쏘렌토R는 2월 미국 시장에서 8,207대를 판매, 중형 크로스오버차량(CUV) 부문에서 포드의 엣지(8,694대)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전달 2위였던 도요타의 라브4가 리콜 역풍으로 5위(6,799대)로 주저 앉은 덕도 본 셈입니다. 기아차는 박스형 소형차 부문에서도 쏘울을 3,600대 팔아 닛산의 큐브(2,814대), 도요타의 싸이언xB(1,539대)를 누르고 이 부문 2월 판매 1위를 기록했는데요. 미국내 판매 대리점 수(650개)가 GM(3,000여개), 도요타(2,500여개)보다 훨씬 적다는 점에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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