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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부족의 연대기' 마지막 유목민 카라출루족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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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부족의 연대기' 마지막 유목민 카라출루족의 수난사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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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샤르 케말 지음ㆍ오은경 옮김/ 실천문학 발행ㆍ464쪽ㆍ1만3,900원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이던 19세기 중반부터 터키 정부는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유목민들에게 정착을 강요한다. 일부 유목민 부족들은 자신들의 전통이자 삶의 방식인 유목을 고수하기 위해 정부, 정착민들과의 유혈 충돌도 감수한다. 특히 카라출루족은 최후까지 정착을 거부하며 20세기 중반까지 유목 생활을 지속한다.

터키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야사르 케말(87)이 1971년 발표한 <바람부족의 연대기> 는 ‘마지막 유목민’ 카라출루족의 수난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케말은 지난 세기 카라출루족의 생활 터전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생존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구술적 전통을 살려 유목민 고유의 신화와 문화를 생생히 재현, 유려한 대서사시를 닮은 소설을 탄생시켰다.

29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부족의 원로부터 젊은이와 어린이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며 전개된다. 알라 산 골짜기의 목초지에서 염소, 낙타를 방목하다가 겨울이 되면 산 어귀의 평지 추쿠로바에 천막을 짓고 한 철을 보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온 카라출루족은 유목민 정착 정책 이후 겨울을 날 땅을 얻지 못해 고초를 겪는다. 무력으로 정주를 강요하는 정부는 물론이고, 시류에 맞춰 발빠르게 추쿠로바에 정착한 다른 부족 지주들은 카라출루족과의 옛 인연을 무시한 채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요구한다.

마을 원로인 대장장이 하이다르 우스타는 선조들이 그랬듯 정착할 땅을 얻는 대가로 치를 최고의 보검(寶劍)을 만드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같은 부족민 눈에도 물정 모르는 노인의 미망일 뿐이지만, 그는 부족의 명운을 걸머졌다는 사명감을 갖고 칼 만들기에 혼신을 다한다. 하지만 살인도 서슴지 않는 상대의 무자비한 대응이 거듭되면서 부족 이탈자는 늘어나고, 남은 자들은 부족의 아리따운 처녀인 제렌에게 지주의 아들과 정략 결혼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제렌은 적들에게 쫓겨다니는 부족의 젊은 수장 할릴과 사랑하는 사이다.

카라출루족은 결국 스스로 유목민의 삶을 마감한다. 그들은 제렌과 함께 마을에 나타난 할릴을 죽인다. 보검을 선물로 들고 권력자를 찾아갔던 우스타에게 돌아온 것은 치욕뿐이다. 우스타와 함께 마을을 지도해온 원로 카흐야는 부족 대대로 지켜오던 천막 신전(神殿)을 제손으로 허물고 만다. 카흐야의 행위는 한 유목 부족의 처절한 몰락을 상징하지만, 체제에 투항하는 대신 자기 정체를 지움으로써 다시금 유목적 탈주를 시도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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