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에 사는 회사원 유석종(29)씨는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지만 최신 디지털 제품 사용 정보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할 만큼 얼리어답터다. 그의 취미는 각종 디지털 기기를 직접 사용해 보면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많은 교감을 나누는 것. 하지만, 그는 요즘 이런 취미 생활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풀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정보기술(IT) 기기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그간의 즐거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장애인들의 생활이 더 편리해질 줄 알았는데, IT 기기 제품 기기 사용 자체가 더 어려워지면서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들어 풀터치스크린을 채용한 IT기기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휴대폰을 포함해 휴대형멀티미디어(PMP)와 MP3 플레이어에서부터 내비게이션 및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전자책(e북)까지 풀터치스크린이 기본 사양으로 속속 채택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제품 사용에 애를 먹고 있다. 앞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 평평한 디스플레이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기능을 작동시키는 풀터치스크린 방식의 IT 기기들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전용 프로그램 개발 업체인 엑스비전테크놀로지의 김정호(39ㆍ1급 시각장애인) 이사는 "최근 풀터치스크린으로 디자인 된 IT 기기들을 살펴보면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조작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이용자환경(UI)을 갖춘 제품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며 "시각장애인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배려한 IT 기기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참다 못한 그는 아예 스마트폰에서도 음성 지원이 가능한 시각장애인용 윈도우 모바일용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같은 현상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사회 흡수를 가로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기관인 한국 웹 접근성 평가센터의 강완식 사무국장은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경영의 차원에서만 보고 최첨단 IT 제품들을 계속 생산해 낸다면 시각장애인들은 갈수록 사회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이 문제에 대해 국가적으로 체계적인 정책을 세우고 사회 복지차원에서 살펴보는 실효성 있는 접근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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