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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려주는 '드림 페인터' 박종신씨/ "당신 꿈이 살아났으면…" 꿈 꾸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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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려주는 '드림 페인터' 박종신씨/ "당신 꿈이 살아났으면…" 꿈 꾸는 화가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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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을 눈 앞에 펼쳐드려요. 당신과 함께 꿈꾸고 이뤄나가고 싶어요."

꿈, 가슴 떨리는 단어지만 입 밖으로 내본지가 언제던가. 유년의 꿈은 삶의 더께에 파묻히고 바쁜 일상에 찌들어 마음 속 금고에 자물쇠 채운 지 오래다. 갇힌 꿈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홀연 의식에서 맴돈다 한들 그냥 웃고 만다.

그런데 그는 호기롭게 꿈을 논했다. 사람들의 꿈을 그려주는 '드림 페인터'(Dream Painter) 박종신(38)씨. 자기소개도 사뭇 꿈결같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꿈이 이뤄지도록 꿈의 한 장면을 그리는 화가에요. 그저 그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꿈을) 이루고 싶어요."

그의 꿈

그의 액면은 누추하다. 드림 페인터란 직업이 있다고 하나 돈을 받고 그려준 적이 없고, 일정한 수입도 없으니 백수에 가깝다. 경기 남양주시의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사는 처지에 부인(36)과 딸(6)까지 둔 가장이다. 통속적인 가치로 따지면 그는 남의 꿈까지 들먹일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는 빛났다. 속도 편해 보였다. 그의 꿈 얘기부터 들어야 했다.

박씨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혹은 화가)였다. 만화 상상화 등을 그리기 좋아했던 터라 예고에 들어가 미술을 전공하겠다 맘 먹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꿈은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예술가는 밥벌이가 힘들다"는 부모의 설득에 1991년 경성대 일어일문학과에 들어갔다.

마음 한 구석이 늘 허전했다. 그림을 꾸준히 그렸고, 그 솜씨가 알려져 일본어 교재를 집필하는 교수의 부탁으로 삽화를 그렸다. 비슷한 업종이다 싶어 97년 대학졸업 후엔 1년간 컴퓨터그래픽과 웹 디자인 공부도 했다. 덕분에 출판사에 취직했는데, 그림은커녕 방문교육사원, 온라인비즈니스마케팅 등 다른 일만 했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사이 그림에 대한 미련만 더 커졌다.

고민이 깊어가던 지난해 9월 친한 회사동료가 답을 줬다. "너처럼 확실한 꿈이 있으면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 일을 해보겠다. 뒷일이 두려워 못한다면 의지가 없는 거지." 박씨는 용기를 얻고 가족을 설득했다.

그간 모은 돈으로 생활해야 했지만 부인 이학선씨는 남편의 완강한 뜻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꿈이 의사였지만 평범한 주부로 사는 부인은 자신은 몰라도 남편의 꿈은 이뤄주고 싶었다. 박씨의 첫 작품은 한 손엔 지구본을 들고 다른 손엔 붓을 들고 해맑게 웃는 박씨 자신이었다.

남의 꿈

지인들에게 드림 페인터의 취지를 알렸더니 호응이 좋았다. "꿈을 그려달라"는 부탁이 들어와 10명 정도를 그려줬다. 물류전문가를 꿈꾸는 무역회사 직원에게는 세계지도 및 거대한 컨테이너선박을 배경으로 해상왕 장보고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 글로벌 MC를 꿈꾸는 이에게는 미국의 유명 MC인 오프라 윈프리, 데이비드 레터맨, 래리 킹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 등을 그렸다.

그림들은 익살맞지만 편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라 그림 속 꿈의 한 장면을 보면서 항상 마음 속으로 준비하라는 뜻을 (그림에) 담는다"고 했다.

박씨는 짧게는 하루 꼬박, 길게는 일주일도 넘게 걸리는 고된 작업을 하면서도 마냥 행복했다.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저는 꿈을 실현하고, 상대와 서로 응원과 격려를 나누기 때문에 그들과 꿈을 함께하는 '드림 메이트'(Dream Mate)도 되는 일석이조거든요."

그는 오히려 "꿈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했다.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의 꿈을 물으면 십중팔구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등바등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 치여 사람들은 상상을 펼칠 머리 속에서조차 꿈을 지운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꿈이 없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1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시대를 살며 꿈을 실현한 위인 100명을 그리는 '백인몽(百人夢) SEASON1'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인도의 독립을 바랐던 간디, 세계 최초 대서양횡단비행을 했던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백범 김구 선생 등.

꿈을 실현하기 위한 위인들의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꿈을 이루도록 삶을 반추해보자는 게 취지다. 20여 편을 그렸고, 100명이 완성되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인 100명을 그리는 '백인몽(百人夢) SEASON2'도 진행할 예정이다.

남은 꿈

박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꿈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꺼려져서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 적이 없다"고 하니 생계는 웹 디자인 등 부업으로 꾸릴 수밖에 없다. 꿈은 이루었으되 드림 페인터가 온전한 직업이 되지는 못하는 현실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래도 그는 "쉽게 포기할 거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꿈은 꿀수록 커지는 법이다. 그는 앞으로 1만 명의 꿈을 그리고 묘비에 '그와 함께 한 꿈은 이루어졌다'는 글귀를 남기는 게 마지막 꿈이다. "하루에 하나만 그려도 30년 가까이 걸리던데, 죽기 전에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그가 또 웃었다. 서너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엔 수많은 이들의 꿈이 웃고 있다. 혹 잊어버렸던 꿈이 떠올랐다면 그에게 연락(dreampainter.co.kr)해도 된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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