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군 부대의 모든 장병들을 바둑동호인으로 만들겠다."
국내 여자프로기사들의 당찬 포부가 작지만 알찬 결실을 맺고 있다. 한국기원 여자기사회(회장 김민희 2단)가 펼치고 있는 군 부대 바둑보급활동이 이번 달로 만 1년을 맞았다. 작년 3월 육군 65보병사단에 처음으로 병영바둑교실을 개설, 여자기사들이 매주 한 번씩 부대를 찾아가 병사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데 이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군 부대에서 이에 대한 문의나 자기 부대에도 바둑교실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육군65보병사단 외에도 60보병사단 6보병사단 해군작전사령부 공군작전사령부 해병대 제1사단 등 육해공을 망라해 8개 부대에 병영바둑교실이 개설됐다.
올 들어서도 육군 1군사령부, 해군 평택2함대사령부, 공군 15비행대대, 해병 3연대31대대 등 4개 부대가 더 늘었다. 한 부대당 평균 수강 인원을 200명 정도로 잡아도 무려 2,000명이 넘는 국군 장병들이 매 주일마다 바둑을 배우고 즐기는 셈이다.
강사는 모두 여자프로기사들이다. 대표강사인 김효정 2단(여자기사회 부회장)을 비롯해 이지현 윤지희 이다혜 3단, 김선미 강승희 배윤진 2단 등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김승준 김성룡 9단 등 남자기사들도 가세했다.
병영바둑교실은 군 부대에 건전한 병영문화를 조성하고 장병 개개인에게는 집중력과 인내심을 길러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포위, 고립, 섬멸' 등 전술적 사고력 배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군은 우리나라 바둑 인구의 큰 젖줄이었다. 지금 바둑팬 가운데 상당수가 군 내무반에서 바둑과 인연을 맺었다. 고참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웠던 추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정석이고 뭐고 없이 다짜고짜 마구잡이로 전투를 벌이는 기풍을 '군대바둑'이라고 부를 정도로 군과 바둑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2008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이상 성인 남자의 8.7%가 군대에서 처음 바둑을 접했다고 한다. 친지나 친구 동료에게 바둑을 배우거나(67.5%) 독학으로 익힌 경우(17.4%)에 이어 3위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군 내무반에서 바둑판이 사라졌다. 바둑 둘 줄 모르는 장병들이 늘면서 컴퓨터나 노래방 기계에 밀려난 것이다. 자연히 장병들이 바둑을 접할 기회가 사라졌고 심지어 바둑을 둘 줄 아는 병사도 대국 상대가 없어 바둑을 즐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최초로 병영바둑교실을 개설한 육군 65보병사단의 경우 바둑 둘 줄 아는 병사가 전체의 5%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즘 20~30대 바둑인구가 크게 줄어든 것도 이 같은 군대의 '바둑 실종'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바둑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바둑을 모르는 병사가 많다는 건 앞으로 군대에 바둑을 보다 많이 보급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군부대 바둑보급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효정 2단은 "가는 곳마다 장병들의 호응이 너무 뜨거워 오히려 놀랐다"며 "그동안 활동을 통해 군대가 바둑 보급의 블루오션이라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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