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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새 시집 '천문'/ 감각적 詩語, 색깔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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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새 시집 '천문'/ 감각적 詩語, 색깔을 입다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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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음악성, 낯선 문법으로 독자적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조연호(41)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천문(天文)> (창비 발행)을 냈다. 1994년 스물다섯 나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 (2004), <저녁의 기원> (2007)과 산문집 <행복한 난청> (2007)을 통해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을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었다.

시의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기에 앞서 밑줄부터 그어두고 싶은 시구들이 많은 것이 조연호 시의 매력이다. 이번 시집에도 '외로움을 중심으로는 신과 인간의 위치가 바뀌지 않는 것' '신도 이름 없는 것은 죽일 수 없다' '정든 시동을 죽이고 여행 떠나야 하는 건 고대인의 우정이었다' '나는 나의 교양보다 외롭지 않다' 같은, 의미보다 감각으로 먼저 다가오는 문구들이 무수하다.

하지만 <천문> 은 조씨의 이전 시집들과 분명한 경계를 짓는다. 상대적으로 서정의 테두리 안에 있었던 시적 주제가 한결 철학적, 관념적인 주제로 옮겨온 것이다. 문학의 영역인 인문(人文)을 포괄하는 '천문(天文)'을 표방한 시집 제목부터가 그렇다. 특히 이번 시집은 성경을 비롯한 경전의 형식을 표나게 차용한다. '물가에서'는 아예 성경처럼 장과 절을 구분하며 전개된다. '1:1 물가에서 첫 이름을 얻었다' '1:5 낳는 자 모두가 낳은 자가 되어 낳는 자를 가지는 것이 아니니, 본 것은 밤 이전으로 너의 부끄러움을 데려온다'. 조씨는 "'유사 경전'을 쓴다는 생각으로 시집을 기획했다"며 "수록된 시 대부분은 잡지 등에 발표했던 것인데, 그때도 개별 시의 완결성과 함께 시집으로 묶였을 때 전체 시들의 통일성을 우선시하며 썼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은 '고전주의자'다. 여기서 고전주의자는 고대인이 아닌 현대인이다. 현대적 지성을 갖춘 시적 화자가 오늘날보다 상대적으로 확고한 인식의 틀 즉 신화, 점성술, 종교 등이 융성했던 시대의 기준에 비춰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불확실성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천문> 의 기획이다.

예컨대 고전주의자는 별을 신성시했던 고대로 건너가 '소통 (불)가능성'이라는 현대적 주제를 탐구한다. '하늘의 문자에서는 분무 살충제를 뒤집어쓴 벌레처럼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전주의자로서의 나는 별의 운동을 스스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별과 나 사이가 투명하지 않다고 여긴다/ 전달에 대한 의문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성난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에서는 평화로운 멜로디가 떠올랐다'(표제작 '천문'에서)

조씨는 '의미' 대신 '색깔'이란 말을 썼다. "현대 미술의 추상화, 현대 음악의 불협화음이 그렇듯 인과성, 서사성보다는 질감과 뉘앙스를 중시하는 것이 현대 예술의 추세"라며 "의미보다는 색깔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냥 편안하게 그 질감을 취하면 된다는 점에서 나를 비롯한 젊고 모던한 시인들의 시는 오히려 읽기 쉬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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