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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6세기 문화혁명' 16세기'서양사의 庶子들' 과학혁명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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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6세기 문화혁명' 16세기'서양사의 庶子들' 과학혁명을 이끌다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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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ㆍ남윤호 옮김동아시아 발행ㆍ940쪽ㆍ3만6,000원

"질병이나 기타 해로운 질환에 듣는 훌륭한 치료법은 비밀로 다뤄져서는 안됩니다. 농업의 비법도 감춰져서는 안됩니다. 항해의 장애물이나 위험도 은폐하면 안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비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과학도 비밀로 취급돼서는 안됩니다."(16세기 프랑스 도예공 베르나르 팔리시)

서양의 과학사가, 문화사가들에게 16세기는 찬밥 신세였다. 보카치오, 라파엘로 같은 탁발한 예술가들이 르네상스 문명의 꽃을 피웠던 14~15세기와 갈릴레오, 뉴턴, 케플러 같은 천재들이 과학혁명의 문을 열어젖힌 17세기 사이에 협공당한 샌드위치 같은 세기로 16세기는 평가되곤 했다.

일본의 저명 과학저술가인 야마모토 요시타카(69)는 서양사의 서자 취급을 받았던 16세기를 '문화혁명'의 시기로 명명하고 그에 합당한 평가를 돌려주자고 말한다. 그는 이 시기를 르네상스의 한계가 극복되고 과학혁명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로 본다.

16세기 문화혁명의 불을 지핀 시대정신의 두 축은 '지식의 비닉(秘匿)체질 타파'와 '경험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다. 저자는 전 시대인 르네상스기가 신의 예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긴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극소수 엘리트들끼리만 영향을 주었다는 비판에서부터 논의의 실마리를 푼다.

지금까지 서양사의 엑스트라 노릇을 하던 화가, 건축가, 목수, 상인, 장인, 외과의사, 뱃사람, 광부 같은 이들을 역사의 무대 중앙으로 불러내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들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지식을 습득한 뒤 자신들의 언어로 대중에게 이를 전파한 실천가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엘리트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자석론> (1600)을 발표해 과학혁명의 뼈대인 중력이론을 알린 케임브리지대 출신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1544~1603)가 돌올하다.

하지만 지은이는 16세기의 선원이자 항해용 기구 기술자인 로버트 노먼을 높이 평가한다. 노먼은 항해 경험을 통해 체득한 자기장 현상을 분석해 <새로운 인력> (1581)이라는 이론서를 라틴어가 아니라 당시의 대중 언어인 속어(영어)로 펴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물질의 연소는 한 물질이 대기 중에 있는 다른 한 물질과 결합해 이뤄진다는 라부아지에(1743~1794)의 이론은 근대 화학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저자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반노초 비링구초(1480~1539)의 업적에 방점을 찍는다. 야금기술자인 그는 경험적으로 연소의 원리를 파악했고 이 원리를 <피로테크니아> (1540)라는 이론서로 정리했다. 그 역시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책을 썼다.

이런 맥락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점수가 깎인다. 그는 회화, 예술, 의학에서 전방위적 성취를 이뤘으나, 기괴한 문자를 사용하거나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기호로 가득 찬 수기(手記)를 쓴 데서 보듯 지(知)의 성벽을 깨는 데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귀족성, 관념성 대신 민중성, 구체성을 중시하는 저자의 시각은 그의 특별한 이력과 연관해 살필 수도 있겠다. 도쿄대 물리학과 출신인 그는 1960년대말 도쿄대 전공투 의장으로 격렬한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그는 이후 장래가 보장된 대학 강단을 떠나 입시학원 강사, 과학저술가의 길을 걸었다. 2006년 그가 낸 교양과학서 <과학의 탄생> 은 일본에서만 10만부 이상 팔렸다.

1,0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챕터별로 완결성을 갖춰 관심이 가는 부분만 읽어도 무방하다. 어느 챕터를 읽어도 교양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나온 듯한 지적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관심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본 저술가들의 뚝심에 경외감도 감출 수 없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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