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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투조종사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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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투조종사의 슬픔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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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는 세상을, 다른 한쪽은 관을 딛고 사는 게 공군 전투기조종사의 삶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군 시절, 한쪽 엔진이 공중에서 폭발해 만신창이가 된 비행기를 안착시킨 위기 상황을 비롯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리고 많은 선후배 조종사를 하늘에 묻었다.

공군 전투기 2대가 전투기동훈련을 하던 중 강원도 황병산 기슭에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다. 부인이 임신 8개월인 편대장과 그를 따르던 신임 총각 조종사, 비행훈련을 직접 지도ㆍ 감독하기 위해 탑승했던 공사 수석졸업생 출신 비행대대장이 순직했다. 사고를 당한 전투비행단은 비통한 심정으로 전우들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 준비보다 사고 조사와 안전검열이 더 큰일이 된다. 다른 비행단은 그보다 먼저 각종 안전검열과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갖가지 사고예방 대책과 새로운 절차가 만들어진다. 사고로 문책을 당하고 진급에도 절대 불리하게 된 지휘관들은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직접적인 사고 원인과는 거리 먼 대책이 쏟아져 가뜩이나 힘든 조종사들을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스트레스는 알게 모르게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한다. 공군 비행사고의 역사를 보면, 한 비행단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연속해서 발생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더욱 강도 높은 조치가 취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나 사고의 진정한 교훈과는 동떨어진, 살아남은 자들의 몸부림만 남게 된다. 이런 그릇된 관행과 풍토는 사고를 예방하고 줄이기보다 전투조종사들이 군을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사고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양산되는 조치들이 전투조종사의 기량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기막힌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고기와 동일 기종의 모든 전투기의 비행을 중단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장 좋은 사고 예방법은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은 동일 기종으로 동일한 기상 상태에서 한층 열심히 비행훈련을 한다. 그게 최선의 추가 사고 예방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 언론 등은 공군이 사고의 근본원인을 찾고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전문적 식견 없이 함부로 사고 원인을 추정하거나 조급하게 원인과 대책을 밝히라고 다그쳐선 안 된다. 오히려 공군이 실질적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시성 대책을 내놓거나 전투조종사들의 기량을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비행안전에 관한 규정과 절차가 없고 교육이 부족해 사고가 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운용의 문제다.

어떤 전투기 사고에서도 조종사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전투조종사들은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 위험이 닥친 순간에도 냉철한 판단으로 위기를 해결하도록 훈련된 직업인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선택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로 훈련된 조종사들도 신이 아니기에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전투비행훈련의 궁극적 목표는 사고로 인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최고의 전투 기량을 연마하는 것이다. 문책과 처벌과 불필요한 절차나 교육의 양산을 통해 슬픔과 스트레스 상태에 빠진 조종사들을 괴롭히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고가 났을 때 전투조종사들을 더욱 격려하고 조용히 교훈을 생각할 여유를 주어야 한다.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

예비역 공군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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