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국민들이 6일(현지시간) 국민투표로 외국 투자자의 예금 상환을 거부했다. 반대 표는 무려 93.6%(50% 개표 상황)에 달했고 찬성은 1.5%에 불과했다. 스테인그리머 시그푸손 재무장관은 즉시 "국민투표 부결이 돈을 갚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채무 이행을 시사했지만 난관이 많다. AFP 통신은 아이슬란드인들이 39억유로(약 6조원) 규모의 외국인 예금자 보호법안 '아이스 세이브'에 단순 거부 이상을 넘어 분노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아이스 세이브는 2008년 10월 파산한 아이슬란드 대형은행 란즈방키의 온라인 상품명을 딴 것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고객 등 30만명의 외국 투자자들의 피해를 아이슬란드인들의 세금으로 갚는 법안이다. 현재 지급능력이 없는 아이슬란드 정부를 대신해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우선 돈을 지급하고 아이슬란드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됐지만 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슨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거부권을 행사, 국민투표에까지 붙여졌다. 이번 국민투표는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이후 처음 실시된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탐욕스런 은행가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한 푼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영국과 네덜란드에도 향해있다. 채권국들은 최근까지만 해도 상환 지연에 따른 5.5%의 이자까지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한 아이슬란드인은 "빚은 갚아야겠지만, 우리만의 잘못이 아닌 만큼 세 나라가 공평하게 빚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계속 받아야 하고 EU 가입 등을 바라고 있어 신용을 생각하면 빚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액수는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며 인구 32만명이 1인당 1만2,000유로(약 2000만원)를 떠안아야 한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은행들이 줄도산,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예금지급 불능사태를 맞는 등 경제가 붕괴된 상태다. FT는 이번 투표 여파로 IMF 등의 자금지원이 막히면 아이슬란드 첫 좌파 정부가 존립 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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