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너머로 가버린 단어들이 있다. '민주'나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당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촛불시위나 용산참사 등에서 '민주 회복'이나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볼 때면 어색한 느낌부터 든다.
지금의 대한민국조차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투쟁과 저항으로 민주화를 일궈야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게 될 터이다. 그 투쟁과 저항은 이제 '잊지 않고 기념해야 할 대상'이지 '현재 진행형이나 미래의 과제'는 아니다. 올해는 2ㆍ28 대구민주화운동, 3ㆍ15 의거, 4ㆍ19 민주혁명 50주년이며, 5ㆍ18 민중항쟁 30주년이다.
■ 민주화운동은 이미 2001년부터 '기념해야 할 역사'로 자리잡았다. 그 해 1월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이 제정됐으며, 7월엔 기념사업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기념사업회법)했다. 당시 기념사업의 제1유형으로 기념관 건립이 제시됐고, 법은 이를 중심 사업으로 규정했다. 2006년에야 기념관(가칭 민주전당)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어느 지자체도 흔쾌히 후보지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 국민의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이 '의무'는 흐지부지됐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들이 스스로 잔칫상을 차리기가 멋쩍었을까.
■ 민주전당건립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조직을 정비해 이 달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전당의 구체적 청사진은 일찍 마련돼 있다. 부산의 민주공원, 광주의 5ㆍ18 민주ㆍ자유공원, 대구의 2ㆍ28 기념공원 등과는 다른, 과거 현재 미래를 소통하고 한국과 세계를 연대하는 복합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완성된 시설이나 건물이 아니라 우리 세대 모두가 계속 채워가는 미래형 터전을 구상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진 '한강의 기적'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모델' 역시 새로운 한국을 상징하는 국제적 브랜드임이 분명하다.
■ 민주전당 건립에는 올해가, 현 정부가 최적의 시기다. 2ㆍ28, 3ㆍ15, 4ㆍ19가 50주년, 5ㆍ18이 30주년을 맞는다. 이런 시기적 상징성보다 더 나은 이유는 현 정부가 10년 만에 들어선 보수정권이라는 점이다. 이미 장이 마련돼 있는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 의지를 표시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광범위한 소통의 계기가 될 터이며, 추진 과정에서 상호 공감대가 또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 기념해야 할 민주화운동이 어느 정치권에 유리한가는 국민들 관심 밖이다. 범국민추진위원회 홈페이지(memorial.kdemocracy.or.kr)에 가보면 여야가 없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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