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안개 피는 겨울의 파편 사이로 봄날은 흐른다
태백시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 물줄기는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에 머물다 흘러내려선 은치교에서 산 깊은 정선땅 임계면으로 넘어든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은치교에 올라 강물을 내려다 봤다. 물은 황톳빛이다. 강물은 홍수가 난 듯 큰 소리를 내고 흘렀다. 비의 양은 대단치 않았지만 강물은 크게 불어 있었다. 산자락의 겨우내 쌓였던 눈들이 녹아 함께 흘렀기 때문이다. 지난번 왔을 때 꽁꽁 얼어붙었던 한강이 봄기운에 녹아 흘러내렸다.
미처 다 녹지 못한 얼음들이 강물 위에 둥실 떠내려왔다. 유빙의 큰 조각은 침대보다도 넓었다. 물 위로 떠내려가는 날카로운 모서리의 얼음 조각. 겨울의 파편들이다.
이 얼음이 강물을 만나고 봄비를 맞으면서 드라이아이스가 물에 빠진 듯 아스라한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녹는 얼음의 몸부림, 가는 겨울의 아우성이다.
3코스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은 문래리 양짓말이다. 길가엔 골지리에서 문래리로의 개명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최근에 이름이 바뀐 동네다. 혹시 '꼴찌'가 연상돼 바꾼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문래교 직전 양짓말 마을로 난 둑길을 따라 걷는다. 크게 휘돌아 흐르는 물길은 속도를 늦추고 평온을 되찾았다. 물억새 휘휘 거리는 강가에선 물오리떼가 둥둥 물에 떠있다. 사람의 인기척을 늦게 깨닫고선 물 위를 치달려 날아오른다. 봄의 날갯짓이다.
물굽이를 크게 돌고선 건너편 밭두렁으로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길이 마음같이 이어져 있지 않았다. 오른편 급경사의 계단길을 올라 짧은 거리를 차도 옆으로 걸으면 다시 용산2교를 건너 물가로 내려가게 된다.
눈이 녹아 질척이는 둑길에 올라섰다. 한없이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는다. 강물은 이리 돌고 저리 돌며 깎아지른 산세를 부드럽게 풀어낸다. 둑길 끝에 지도에는 안보이던 다리 하나를 만났다. 이름은 '논들약수교'. 작년 12월 개통된, 아직 시멘트 냄새조차 다 가시지 않은 새 것이다.
다리 건너편의 평지마을은 '논들'이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이 크게 휘돌며 생긴 들판이다. 논들의 강 건너편엔 시커먼 수직의 기암이 우뚝 서있다. 정선 사람들은 이 깎아지른 석회암 암벽을 '뼝대'라 부른다. 뼝대의 갈라진 좁은 틈들엔 작은 물줄기가 겨우내 얼어붙어 만든 얼음폭포가 매달려 있다. 한 폭의 수묵화를 품고 사는 마을이다.
마을 강둑을 따라 수묵화의 먹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뼝대를 스치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마을을 벗어나는 길가의 언덕에 오르면 청청한 소나무를 프레임 삼아 깎아지른 기암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다.
언덕을 넘고 구멍 숭숭 뚫린 콧구멍 다리를 건너 다시 물길을 따라 걷는다. 왼편으론 푸른 보리밭이다. 잘 깎은 잔디 크기로 올라온 푸른 보리가 반갑다. 너른 초록의 밭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솟았다. 희끗희끗 잔설을 다 털어내지 못한 푸른 밭의 풍경이 눈을 따뜻하게 한다.
보리밭을 지나 다시 다리를 건너 월탄마을로 접어든다. 또 한 굽이 크게 휘도는 물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 끝 부분에서 산길과 만난다. 노인봉(609m) 뒤를 돌아 낙천리와 연결된 옛길이다. 햇빛을 가린 나무 때문인지 길 위엔 아직도 발목 높이의 눈이 쌓여있다. 저벅저벅 밟을 때마다 눈은 푹푹 꺼지면서 물기를 짜낸다.
길의 경사는 급하지 않았다. 길의 중간쯤 만난 고갯마루에선 시야가 확 터졌다. 산이 보듬고 물이 휘감은 평온한 마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내려가는 길에도 경사는 완만했다. 강물이 휘돌듯 산길도 휘돌며 그 경사를 최대한 눕혀놓았기 때문이다.
낙천교에 이르러 2km 가량의 산길이 끝난다. 3코스의 마지막이다. 낙천마을 앞에서 강은 석병산 수병산 등에서 흘러내려온 임계천과 합수를 한다.
정선=글ㆍ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강원 정선군 임계 까지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IC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을 거쳐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르다.
● 아리수길 걷기 3코스는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에서 시작해 낙천리 낙천마을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는 12km. 천천히 걸어서 4시간 가량 걸린다.
●트레킹 하기 전에 든든히 배를 채우는 것이 좋다. 문래리의 금오식당이 추천할 만하다.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청국장 등이 일품이다. 1인분에 5,000원. (033)562-6742
● 승우여행사는 13, 14일 출발하는 아리수길 걷기(3코스) 참가자를 모집한다. 오전 7시30분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당일로 다녀오는 일정이다. 참가비는 4만5,000원. (02)720-8311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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