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의 SBS 독점 중계를 보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SBS의 남아공 월드컵 단독 중계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라.”(김인규 KBS 사장) “세금을 들여 양성한 국가대표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특정 방송이 독점 중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바로잡겠다.”(김재철 MBC 사장)
6월 12일 개막하는 남아공 월드컵의 SBS 단독 중계를 막기 위한 KBS와 MBC의 저항이 거세다. 2006년 SBS가 3개 방송사 협의체인 코리아풀을 깨고 국제축구연맹(FIFA)과 단독으로 방송권 계약을 한 이후 시작된 3사의 공동 중계 협상은 3년여를 끌어오면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감정의 골만 더 깊어져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공동 중계 가능성은 있을까.
3사 모두 뼈아팠던 밴쿠버 동계올림픽
SBS는 동계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면서 일단 만족스러운 성과를 올렸다. 올림픽 기간(2월13일~3월1일) 평균 시청률은 9.0%(수도권ㆍAGB닐슨 조사)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KBS MBC SBS 3사의 시청률을 합한 7.7%보다 높았다. 김연아, 쇼트트랙 대표팀의 경기 등은 분당 최고 시청률이 40%를 넘었다. 경제적인 이득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SBS는 이번 올림픽으로 142억원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 방송권료(200만달러)와 추정 제작비용을 합친 100억원을 빼고도 40여억원이 남는다.
하지만 당초 목표인 ‘스포츠에 강한 SBS’ 이미지 구축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해설위원의 수준 미달, 부적절한 종교적 언어 사용 등으로 자질 문제가 불거졌고,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 등 금메달리스트들을 집중 조명한 특집 등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움을 남겼다.
SBS의 단독 중계를 비난만 하면서 보도에 소홀했던 KBS와 MBC도 얻은 것은 없다. 두 방송사는 대회 초반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줬던 이정수의 쇼트트랙 우승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감정적 보도 행태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대회 나흘째가 돼서야 보도에 나섰지만 한국 선수단의 선전에 비해 양과 질에서 부족했다는 평가다. 결국 방송 3사 모두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공동중계 당연" vs "3년 외면하고 무슨 염치로"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동계올림픽보다 높으면 높았지 덜하지 않다. KBS와 MBC가 공동 중계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일본, 북한이 조별 예선에 올라 있고 한국 대표팀의 경기시간대도 좋다. 12일(이하 한국시간) 그리스전, 17일 아르헨티나전이 각각 오후 8시30분에 열린다.
KBS와 MBC는 공동 중계의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MBC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나라처럼 상업방송이 독점적 (올림픽) 방송을 한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공영방송의 참여가 배제됐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박영문 KBS 스포츠국장은 “동일한 경기라도 누가 해설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이를 선택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권리”라며 “월드컵과 같은 국민 관심 경기는 공동 중계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SBS는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분위기다. 2006년부터 여러 차례 공동 중계를 제안했는데도 외면하던 KBS, MBC가 이제 와서 손을 내미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것. 성회용 SBS 정책팀장은 “SBS는 지난 3년여 동안 적자를 떠안으면서 월드컵 패키지인 17세 이하 청소년 축구, 여자 청소년 축구, 풋살 등 비인기 경기를 묵묵히 중계해왔다”면서 “두 방송사는 아무런 의무도 이행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공동 중계를 운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800억원 방송권료, 정부 개입도 관건
하지만 방소가에서는 협상 타결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있다. 한 관계자는 "SBS가 사실 고통 분담 차원에서 소송까지 가기 전에 다른 방송사들이 손을 잡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남아공 월드컵 방송권료로 6,500만달러(800여억원)을 지출했는데 자체 광고 수익만으로는 이를 메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방송 3사의 광고 수익은 총 628억원이었다. 이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800억원의 방송권료를 SBS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계산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월드컵 축구 중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우선 방통위는 5일 방송 3사 스포츠국장이 참석하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통위가 방송권 분배를 강제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이번 협상이 방송 3사의 경영진을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사 경영진이 큰 틀에서 공동 중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후 실무자 협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KBS와 MBC는 만약의 경우 협상이 안될 것을 대비해 방송권 분배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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