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시청 과장과 전남 신안군의 면장이 언제 한 방을 쓰면서 토론을 해보겠습니까. 서로의 시책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지요"
충북 영동군 난계국악체험전수관에서 열리는 향부숙(鄕富塾)이 '배워서 남 주려는'공무원들의 배움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을 풍요롭게 만드는 글방'이라는 의미의 향부숙은 사단법인 한국지방자치경영연구소(소장 강형기 충북대교수)가 공무원들의 자치 역량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2008년 문을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공부에 목마른'지방공무원들이 몰려 첫 해 111명(1기생), 지난해 93명(2기생) 등 지금까지 20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 신입생 93명은 5일 입학한다.
3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되는 글방은 4,5급 간부들로 이뤄진 '창조공방'과 6,7급 실무진을 위한 '정책공방'등 두 반으로 나뉜다. 참가자들은 매달 한 차례씩 글방에 모여 1박 2일 동안 함께 숙식하며 공부한다. 수업은 주로 학생들 스스로 논제를 던지고 풀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컨대 이론보다는 토론과 다양한 체험 교류가 배움의 기둥이다.
"지역의 가장 큰 자원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인데, 이것을 발굴해 창조적으로 지역발전에 활용하는 게 지자체 공무원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공무원 스스로 자원을 발굴해 새롭게 창조하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훈장인 향부숙장 강형기 교수는 "향부숙의 공부는 공직자가 행정을 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찾고 가공하는 과정이라 보면 된다"며 "승진 요건을 채우려는 의무 연수로는 공무원의 의식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도 했다.
2기 졸업생 한경택(57∙경남 함양군 함양읍장)씨는 "토론 위주의 교육방식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갈수록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면서 "지역을 위해 관리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눈을 뜨게 한 1년이었다"고 말했다.
이 글방은 100여 명의 교수, 민간 전문가, 자치단체장의 맞춤 특강과 미래 혁신, 정책대안 등 우수한 강의 내용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강의실에는 매번 기업체 임원 등 청강생들이 수십 명씩 몰려든다. 학칙도 엄해 세 차례 결석하면 무조건 제적이다. 1기생으로 입학한 전남 순천시청 최덕민(53) 경제환경국장은 당시 갈대밭 축제 담당 과장을 맡아 어쩔 수 없이 세 차례 결석했는데, 결국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축제 성공사례를 주제 발표한 끝에 2기생과 함께 졸업할 수 있었다.
무료 학교를 표방하고 문을 연 이 글방은 "책값과 숙식비는 내겠다"며 교육생들이 자처해 2기생부터 교재비와 식비 등을 받고 있다. 또 자치단체장 출신 국회의원 4명(이진복, 이학재, 김창수, 유성엽 의원)과 기업체 임원들도 후원금을 보내와 경비의 일부를 충당한다. 향부숙은 하지만 현직 자치단체장의 후원금은 절대 안 받는다. 이유는 "학부형으로부터 성금을 모으는 것 같아서"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향부숙은 올 가을 영동군 양강면 금강변에 어엿한 새 교육관을 지어 이사한다. 영동군의 도움으로 지어지는 교육관에는 공무원들이 아무 때나 와서 공부할 수 있는 도서실도 생긴다. 강 교수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의원들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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