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는 잊어라, 이제는 소치다.'
17일간 대한민국을 웃게 했던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6개, 은 6개 동 2개를 따내 종합 5위를 마크,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에 따라 '한국 동계스포츠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수직 상승했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 이면에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이 짙게 깔려있다. 축제가 끝나는 순간,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은 종목조차 비인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등록 선수 현황을 보면 비인기의 실체가 금방 드러난다. 지난해 말 기준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등록선수가 학교, 실업, 동호인 회원까지 모두 포함해도 각각 537명, 500명에 그쳤다. 피겨스케이팅은 348명에 불과하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빙상 3종목 모두 등록선수가 일본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이런 황무지 같은 토양에서 세계챔피언이 나왔다는 것은 과학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빙상 선진국들 사이에 '한국은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를 길러내는 신묘한 재주가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떠돈다"고 덧붙였다. 피겨의 김연아와 수영의 박태환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도 이렇게 비과학적으로 설명해야 납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비인기 종목은 인프라에서도 열악하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국제규격에 맞는 경기장이 태릉 한 곳뿐이다. 따라서 국가대표와 일반선수, 일반인 등이 시간대를 나눠 틈새훈련을 하는 실정이다.
설원의 챔피언을 가리는 스키종목은 활강ㆍ회전ㆍ대회전ㆍ슈퍼대회전ㆍ복합으로 나뉜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에 활강과 슈퍼대회전 등에는 선수가 없어 출전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전국에 10여개의 스키장이 있고 등록선수도 1,000여명이 넘지만 아찔한 속도감을 즐기는 활강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한국스키의 현실이다. 이유는 국내 스키장의 표고가 낮아 활강 경기를 치를 수 없다는데 있다. 활강 경기는 표고차가 650m이상이 되어야 가능한데 국내에서 가장 높은 표고차는 450m로, 그것도 하이원 스키장 한 곳뿐이다.
한국은 올림픽에서 전통적으로 비인기 종목들이 확고한 블루오션을 구축했다. 선수들은 시상대 맨 위에 올린 태극기를 보고 눈물지었다. 금메달을 따냈다는 기쁨보다는 비인기종목에 대한 설움이 북 받쳐 흘러내린 눈물은 아니었을까.
정부는 최근 스키를 비롯한 비인기 15개 종목의 선수육성을 위해 올해 20억6,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들 비인기 종목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처음이다. 4년 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빙상뿐만 아니라 스키에서도 금메달을 캐내는 '기적'을 기대해 본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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