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4월 4일)을 전후해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생명과 평화를 위한 2010년 한국그리스도인 선언’을 한다. 특정 교회나 교단의 테두리를 넘은 개신교계의 진보적 목소리가 통일된 선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22년 만의 일이다. 개발독재가 사회 기층민의 실존을 위협하던 1973년의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 냉전 대결이 심화하던 1988년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신앙선언’에 이어 세 번째다. 선언을 준비 중인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시국선언으로 비쳐지는 것을 저어했으나 정치적 의미 부여를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선언의 필요성을 제기한 김경재(70ㆍ사진) 목사를 만났다. 기독교의 배타성을 비판해 온 진보적 신학자인 김 목사는 한신대 교수로 30여년 동안 재직하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 선언문 초안은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두 갈래 의미에서 위기다. 첫째는 한국 기독교 자체의 위기다. 교계 지도자들이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양적 성장주의와 배타적 독단에 빠져 있다. 보수적 기독교계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는 그나마 남아 있던 비판적 안목과 발언까지 사라졌다. 종교로서의 사회 정화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세속적 권력에 속박된 듯 보인다. 이번 선언의 첫째 목적은 이런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자기 반성이다. 기독교인들의 참회와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한국사회, 나아가 지구촌 문명사회 전체의 위기다. 자본주의는 거의 제국주의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앞에 생태와 환경, 인간적 가치들은 종말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선언은 이런 현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 선언에는 누가 참여하는가.
“기독교 사회 내의 양심적인 목회자, 신학자, 활동가 등 1,0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진보적 신학자 연대도 구상됐으나 신앙적 선언이 더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두 조직이 아닌 개인 자격이며 평신도들도 대등하게 선언에 참여한다. 1970, 80년대의 선언은 각각 민중신학과 인권ㆍ통일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졌지만, 이번 선언은 진솔한 참회와 성찰이 첫째 목적이므로 조직화 계획은 아직 없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지속적인 진보 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1973년의 선언이 ‘민중성’, 1988년의 선언이 ‘통일’에 방점이 있었다면 2010년 선언은 ‘생명’을 화두로 내세운 듯하다.
“민중이나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생명과 환경의 문제가 전지구적으로 깨어 있는 문제가 됐다. 특히 한국 사회는, 지구촌이 문명의 전환기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기의 구태의연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4대강 사업만 보더라도 녹색성장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지 않은가. 물질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관점을 기독교인부터 바꿔야 한다.”
- 진보라는 가치가 점유하는 영역과 가능성이 축소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그런 흐름이 더 뚜렷한 듯 보인다.
“예수의 복음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현실을 넘어 보다 인간적인 대안을 찾는 참신성에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외면받는 것은 그 ‘래디컬한 모험정신’을 포기한 데 이유가 있다. 한국 기독교는 순수한 생명력으로 가난한 자의 벗이 되는 갈릴리(예수가 활동한 유대 땅) 복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선언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 대표되는 한국 교회의 보수적 목소리가 마치 한국 기독교 전체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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