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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울의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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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울의 공기

입력
2010.03.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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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간 해 가을 휴학을 했다. 지금은 치졸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20대로 접어드는 황량한 마음을 다독일 다른 방법을 그때는 몰랐다. 동서양 철학책을 배낭 가득 지고 산속 암자로 갔다.

인적이 끊긴 산속의 생활은 단조로웠지만 맑았다. 계곡의 가는 물줄기가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밝히고, 나뭇가지를 헤치고 내달리는 바람소리가 마음 속 찌꺼기를 훑어 내렸다. 이끼 돋은 돌 틈을 흘러내린 샘물과 들이마실수록 시원한 공기가 당연해질 무렵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겨울을 넘기며 마음이 바뀌었다.

■ 부모님 성화도 있었지만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기차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눈물 한 줄기를 흘렸다. 먼지와 매연, 땀과 음식 냄새가 뒤범벅된 탁한 공기였지만,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삶이라고 확신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도시가 풍기는 삶의 냄새는 건강하다. 다만 세월이 그렇게 흐르고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울의 공기는 이제 숨이 차다. 주말에 교외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도시 전체가 회색 대기에 갇혀 있는 모습이 눈에 박힌다. 공장 굴뚝이 사라지고, 벙커C유 아파트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렇다.

■ 주범은 자동차다. 탈ㆍ저황 휘발유가 널리 보급되고, 경유 버스가 액화천연가스(LNG) 버스로 바뀌고 있지만 워낙 크게 자동차가 늘어나다 보니 오염물질 총배출량은 줄지 않는다. <2009 환경백서>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대기중 이산화황(SO₂)의 연평균 농도는 1999년 0.007ppm에서 2001년 0.005ppm까지 떨어졌으나 그 뒤로는 낮아지지 않았다. 이산화질소(NO₂)나 오존(O₃) 농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99년 각각 0.032ㆍ0.016ppm에서 2008년 0.038ㆍ0.019ppm으로 올라갔다. 미세먼지까지 합치면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커진다.

■ 2005년 1월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 특별법' 시행으로 10년 이내에 수도권 대기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정책이 본격화했다. 정부는 평균 가시거리가 10㎞에 불과한 수도권 공기를 서울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맑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목표연도를 4년 여 앞둔 지금은 난망이다. 대기 질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이산화탄소 저감 대책에 치중한 '녹색성장'의 강조도 걱정의 불씨다. 대기오염이라는 눈앞의 불을 끄는 데 필요한 정책역량을 흩뜨릴까 싶어서다. 서울 가깝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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