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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임실 필봉마을 대보름 풍물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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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임실 필봉마을 대보름 풍물 굿

입력
2010.03.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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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는 들썩 가슴은 쿵쾅… 잠자던 흥의 DNA를 깨우다

지금도 몸이 뜨겁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의 정월대보름 풍물굿.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흥겨울 줄은 미처 몰랐다. 마을 주민과 필봉농악보존회 회원, 전국서 몰려온 구경꾼들이 함께 토해낸 열기가, 아직까지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3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필봉농악은 호남좌도의 대표적 풍물굿으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예술성과 역사성을 공인 받았다. 그 신명 나고 아름다운 가락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것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배우겠다고 나서면서 필봉농악은 강릉농악, 평택농악, 삼천포농악, 이리농악과 더불어 남한의 5대 농악으로 자리했다.

필봉농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월대보름 풍물굿이다. 정월대보름은 새해 들어 처음 보름달이 뜨는 날로, 우리 선조는 이날 다양한 민속놀이를 통해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그러나 민속은, 생활 속에서는 많이 자취를 감추었고 실내 무대 등 한정된 공간에서만 드물게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그에 반해 필봉농악은 이날 마을 전체를 무대 삼아 무려 10시간 동안 신나는 판을 벌임으로써 전통 민속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마을은, 붓끝처럼 생긴 필봉산에서 이름을 땄는데 지금은 20가구 정도가 사는 작고 한적한 농촌이다.

올해는 마침 대보름(2월 28일)이 일요일이었다. 토요일 오후 2시, 마을 마당에서 꽹과리, 징, 장고, 소고 등으로 구성된 굿패가 한바탕 풍악을 울리며 굿의 시작을 알렸는데 이를 기굿이라고 한다. 포수, 양반, 할미, 각시, 창부, 화동, 무동 등으로 분장한 잡색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대신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운다. 가끔 시골에서 소규모 풍물놀이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수십 명의 풍물패가 한 마을에서 떠들썩하게 공연하는 것은 처음 본다. 굿패가 내는 그 소리에 심장이 쿵쿵 뛴다.

30분 정도 기굿을 하던 굿패가 마을 마당을 출발, 당산나무로 내려가 풍년과 건강을 빌고 병마와 재액을 막아달라며 제를 올렸다. 축문 낭독에 이어 소지(燒紙ㆍ소원을 적은 종이를 태우는 것)로 당산제가 끝이 나면 제례 참가자와 구경꾼 모두 음식을 나눠 먹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술과 떡을 권한다. 한 주민이 따라준 막걸리 한 잔을 비우자 또 다른 주민이 데친 문어를 입에 쏙 넣어주는데 기분이 참 좋다.

당산제를 끝낸 굿패는 마을의 식수원인 공동우물로 가 사람들의 건강과 다복을 빌었다. 상쇠 양진성(44)씨가 우물에 세 번 절한 뒤 "아따 그 물 좋구나, 아들 낳고 딸 낳고 벌컥벌컥 마시자"고 덕담하자 분위기가 돋는다.

굿패는 이제 마당밟이에 나섰다. 가가호호 돌며 액을 몰아내고 집안의 안녕과 평온, 풍년을 비는 것인데 이날은 날이 궂어 마당 넓은 집 한곳에서만 굿을 했다. 30분 이상 신나는 판을 벌인 뒤 흥에 겨운 상쇠가 '성주풀이'를 부르고 잡색 가운데 각시가 '진도아리랑'을 부르자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굿판으로 몰려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일행과, 점잖게 생긴 중년남성까지 뛰어들어 덩실덩실 한다.

잔뜩 흐렸던 하늘이 야속하게도 비를 뿌리기 시작했지만 달아오른 열기를 식힐 수는 없었다. 굿패가 마을 마당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판굿을 열자 판에 모인 모든 사람이 일심동체, 혼연일체가 돼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지만 간이 비옷을 하나씩 입은 구경꾼들은 완전히 흥에 취해 버렸다. 빗물에 흙탕이 되고 신발과 바지가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는 아이를 앞세우고, 중년 부부는 마주 웃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무뚝뚝해 보이는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팔 다리를 젓지만 중늙은이 남성은 홀로 꼿꼿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춤을 춘다. 초로의 남성은 흥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통제선을 넘은 듯 했지만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무방할 날이었다.

밤 9시가 되면서 마지막 행사인 달집 태우기가 시작됐다. 누구는 종이에 소원을 적어 달집에 꽂고 또 누구는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달집에 불이 붙자 나무가 타면서 툭툭 소리가 났다. 잡귀, 잡신, 액운을 물리치고 만복을 불러온다는 소리다.

상쇠가 "내년에 다시 보자"며 종료를 알리면서 밤 10시께 풍물굿이 끝났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12시가 넘도록 계속될 행사였다. 그것이 아쉬웠던지 젊은이들은 밤을 새우며 더 놀았다.

많을 때는 3,000명까지 왔다고 하나 이날은 외지인이 많지 않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민속에 대한 관심이 식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격식 따지지 않고 한바탕 신나게 놀고 싶다면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다면 몸이 들썩이고 전율할 수밖에 없다. 내년 정월대보름에는 놀 줄도 모르고 감정도 무딘, 목석 같은 사람들 데리고 또 가고 싶다.

임?글ㆍ사진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 필봉농악은? 마을 단위 전승 농악으론 유일… 춤추는 잡색 많은 게 특징

필봉농악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몸을 들썩거린다. 그 판에 뛰어들어 함께 놀고 싶어진다. 그만큼 박력 있고 신이 나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리듬이 힘차고 투박한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빠르면서도 힘있는 리듬이 구경꾼을 가만 두지 않는다. 춤추는 잡색을 많이 두는 등 놀이 기능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잡색은 독특한 의상, 특이한 춤, 관객에게 건네는 재미난 말로 분위기를 잡는다.

강릉농악, 삼천포농악 등 5대 농악 가운데 마을 단위로 전승되는 것은 필봉농악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정월대보름 풍물굿에서 보듯, 이들의 공연에서는 마을 전체가 무대다. 굿패와 관객의 경계도 느슨할 수 밖에 없다.

필봉농악의 역사는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지금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1900년대 상쇠 박학삼 선생이 마을에 오면서부터다. 그의 뒤를 송주호, 양순용 상쇠가 이었다. 현재의 양진성 상쇠는 양순용 상쇠의 아들로 2008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필봉농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마을 앞 필봉전통문화체험학교(063-643-1902)인데 양진성 상쇠가 교장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8월 전국 5대 농악이 기량을 겨룬다.

그림 같은 경치의 옥정호와,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사선대가 인근에 있으니 함께 들러도 좋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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