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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4계절이 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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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4계절이 주는 행복

입력
2010.03.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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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려는 골목에 서니, 새삼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설이 내려 모두가 고생했던 겨울을 지내고 맞는 봄이어서 가슴은 더 두근거린다. 우리 인간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연이 알아서 봄을 만들어 나간다. 해는 조금씩 길어지고, 흙과 바닷물은 조금씩 따뜻해지고, 나뭇잎은 파릇하게 새 옷을 입는다.

사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에만 급급하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인 날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이렇게 우리의 젊은 날이 지나는가 생각하다 보면, 야근을 불사하며 끝마치는 프로젝트며 새벽같이 일어나 마감하는 원고들이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은 것이다. 딱 그런 마음이 들 때쯤 봄은 온다. 그래서 그 나물에 그 밥인 일상이 갑자기 싱그러워진다.

날이 따뜻해지니 내가 옷을 얇게 입는다. 옷을 얇게 입으면 머리도 한 번 다듬고 싶다. 머리를 다듬고 옷을 얇게 입은 나를 보는 남편도 덩달아 봄차림을 한다. 내 눈에 남편이 다르게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지난 계절보다 활기차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느낄 만큼 가까운 지인들과 또 나눌 얘깃거리가 생긴다. 그 자리에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지인들과의 모임을 준비하러 나는 시장으로 나간다.

"씀바귀 맛있겠어요"라고 운을 띄우면, "살짝 데쳐서 새콤하게 무치면 도망갔던 입맛이 돌아오지!"라고 받아주시는 시장 아주머니. 씀바귀와 색이 예쁜 미나리를 한 봉지씩 바구니에 담는다. 집에 말린 곤드레가 있으니까 곤드레밥을 짓고, 씀바귀는 양념에 무치고 미나리는 맑은 국물에 띄워 먹어야겠다 생각하니, 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사뿐하다. 달리 차린 것 없이 양념장 곁들인 곤드레밥에 맑은 국만 준비해도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은 행복해한다.

그렇게 한바탕 먹고, 수다를 풀고 나면 오늘 먹었던 냉이며 씀바귀 이야기를 다음 여름에 다시 꺼내게 된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그 계절에 맞는 먹을거리와 추억이 다 있다. 계절이 바뀌지 않는 곳에 살았더라면 가질 수 없었을 입맛과 기억이다.

자하문 근처 앵두나무가 있는 동네에 사는 지인은 봄이면 앵두화채로 말을 건다. 앵두화채를 얻어먹고는 지난 가을에 담근 더덕주를 조금 나눠 보낸다. 계절로 대화를 하는 모습들이 꼭 시를 쓰는 것 같다. 빌딩 숲 가운데 살지만, 마음만큼은 시인처럼 말랑하게 지켜주는 네 계절이 그래서 고맙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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