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재앙을 차례로 겪은 아이티와 칠레를 억지로 비교한 글들이 못내 거슬린다. 우리 언론에 특히 두드러진다. 중남미에서 잇달아 발생한 재난 상황을 비교하는 건 언뜻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러 형편이 전혀 다른 두 나라의 재난 대비와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엉뚱한 느낌이다.
아이티의 불행에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던 언론이 칠레가 피해가 적고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강조하느라 아이티를 업신여기는 듯한 모습은 희한하다. 인도적 지원 확대과 국격 등을 떠들기에 앞서 세상을 보는 시각부터 균형 있게 가다듬었으면 한다.
■ 이런 비교는 칠레 지진(규모 8.8)이 아이티 지진(규모 7.0)보다 500배 이상 강력한 사실을 앞세운다. 그런데도 인명피해는 아이티의 사망 23만명 보다 훨씬 적어 1.000명 정도에 그친 것에 경탄한다. 이처럼 뚜렷한 차이는 칠레 지진의 진원지와 진앙이 멀리 떨어진 점도 있지만, 평소 지진 대비태세가 크게 다른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또 그 것이 우리가 새길 교훈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는 지진의 실제 충격과 피해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진 흔적이 없다. 지진 규모와 당장 드러난 피해 상황만으로 두 나라와 국민의 수준을 비교하는 논리적 비약을 무릅쓰고 있다.
■ 아이티 지진은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16km 떨어진 해저 13km 깊이에서 발생했다. 칠레 지진은 제2도시 콘셉시온에서 115km 거리의 해저 34km가 진원지다. 이런 거리 차이에 따라 지진의 실제 충격과 피해 정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잊은 듯 애초 비교 대상이 아닌 칠레를 칭찬하며 아이티를 새삼 열등하고 처량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칠레는 대표적 지진 다발국에 1인당 GDP 1만 달러가 넘는 나라이니 지진 대비태세를 잘 갖출 수 밖에 없다. 반면 아이티는 1인당 GDP 1,000 달러도 되지 않는 중미 최빈국인데다, 19세기 이래 지진이 없었다고 한다.
■ 아이티의 참상 속에서'온후하고 낙관적인 국민'을 칭찬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 언론이 지레 감탄한 칠레에서 약탈과 방화가 잇따르는 아이러니를 어찌 볼까. 선진국 언론은'쿠데타와 지진'을 제3세계의 숙명인 양 그리는 편견을 흔히 드러낸다. 후진국 언론이 이를 쉽게 추종한다는 연구도 있다. 아이티와 칠레의 재난에 우리 언론이 변덕스러운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재난 구호 등 국제적 기여를 늘려야 하지만, 진정으로 인도주의를 실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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