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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난 삼수야" 환경미화원 쟁탈전/ 구미시 채용 시험장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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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난 삼수야" 환경미화원 쟁탈전/ 구미시 채용 시험장에 가보니…

입력
2010.03.0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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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9시 경북 구미시 광평동 구미시민운동장. 사흘동안 퍼붓던 빗방울이 그치고 봄 햇살이 찬란했던 이날 운동장에는 '구미시 환경미화원 채용 체력시험' 응시자 460명과 응원 나온 가족 등 1,000여 명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반팔에다 반바지를 입은 20대부터 선글래스를 낀 30대 여성, 마라톤 선수 복장의 중년 아저씨까지 각양각색의 응시자들은 스트레칭과 가벼운 뜀박질로 몸을 풀었다.

시험은 수험표 대조작업으로 시작됐다. 놀랍게도 단 한 명의 결시자도 없었다. 지난달 25일로 예정됐다 비 때문에 1주일 이상 미뤄졌는데도 100% 응시율을 보인 것이다. 유치원 교사 출신인 박수현(33ㆍ여)씨는 "최근 환경미화원에 대한 열기가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나이 든 어르신도 하는데 여자라고 못할 게 뭐냐"고 각오를 다졌다.

3개 종목으로 이뤄진 체력시험은 1970년대의 대학입시 체력장보다 더한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여성이 34명이나 응시했지만 성차별이라 볼만한 우대조항은 크게 없었다. 청소 현장에서 남녀 구분을 둘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다.

'200m 빨리 달리기'에서 특히 남녀의 각축이 치열했다. 성별 구분 없이 4명이 한 조로 달리던 와중에 결승점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30대 아줌마가 같이 뛴 남자 3명을 제치고 1등으로 골인한 것이다. 최재은(36ㆍ여)씨는 "환경미화원 시험에 대비, 3년 전부터 헬스클럽과 운동장에서 꾸준히 체력단련을 했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철봉 오래매달리기' 시험장에서는 90초를 버텨야 2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남자 응시생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버티기에 능한 여성 응시자들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운동장 동쪽 출입문 부근에서 열린 '모래가마 메고 50m 빨리달리기' 시험에서는 사력을 다하는 응시자들의 가쁜 숨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남자는 20㎏짜리를 들고 8초, 여자는 10㎏짜리에 9초에 주파해야 20점 만점을 받는 데 남녀 모두 버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간혹 만점자가 나오긴 했지만 넘어지거나 모래가마를 떨어뜨려 실격하는 응시자가 속출했다.

그나마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가족의 힘찬 응원이 없었다면 이들의 힘겨움은 더했을 터이다. 한살배기 젖먹이를 데리고 나온 김혜란(27ㆍ여ㆍ진평동)씨는 "남편이 이번에 합격하면 집 앞에 치킨 집을 열 것"이라며 "환경미화원은 오후 4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남편이 저녁 시간대 배달을 맡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14명을 모집하는 이날 환경미화원 채용시험의 경쟁률은 무려 33대1. 기피직종으로 꼽히던 게 엊그제 같은 환경미화원은 어느 새 '좁은 문'이 돼 있었다. 단순히 실업난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오전 6시에 출근에 점심 휴식 2시간을 빼고도 오후 4시면 퇴근할 수 있어 자투리 시간이 넉넉한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여기에다 하자가 없는 한 61세 정년도 보장돼 속칭 '철밥통'이 따로 없다. 업무도 생각보다 힘들고 더럽거나 어렵지 않다. 생활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등 기피 쓰레기는 용역회사가 다 처리한다. 시간외 근무수당도 1만2,000원으로 7,500원인 20년차 행정직 공무원보다 훨씬 많다.

최연소 응시자인 임형규(22ㆍ해평면)씨는 "빨리 사회에 진출하고 싶어 대구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면 웬만한 기업의 신입사원 못지 않을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응시자 중에는 재수, 삼수까지 한 응시자도 20% 가량 된다. "한달 전부터 몸을 단련했다"는 이춘화(42ㆍ여ㆍ형곡동)씨는 "두 번이나 낙방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없는 것 같아 또 도전했다"며 대단한 각오를 보였다.

응시 연령대도 20대 82명, 30대 225명, 40대 139명, 50세 이상 14명 등으로 노년층은 찾아보기 힘들다. 초ㆍ중학교 졸업자는 26명에 그친 반면 대졸이상 학력자는 132명으로 5배나 돼 이제는 고학력이 대세다.

명문대 졸업생도 상당수 있었다. 고려대를 졸업한 병원 사무장 출신의 김모(39ㆍ옥계동)씨나 경북대 환경공학 석사로 건설회사를 다닌 강모(34ㆍ봉곡동)씨는 1차 체력시험 합격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엄덕용 구미시 청소행정과장은 "2003년부터 공개채용 중인 환경미화원 시험의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것은 물론 고학력자와 여성도 늘고 있다"며 "3D 직종이란 편견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평했다. 구미시 환경미화원 1차 시험 결과는 5일 나오고 10일 면접을 거쳐 15일 최종합격 여부가 가려진다.

구미=글·사진 김용태 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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