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에 이른 인류의 번영 때문에 벌어지는 생물 종(種)의 사멸, 생물다양성의 파괴가 결국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를 맞아 생물다양성의 위기상황과 국제적인 회복 노력을 3회(매주 목요일자)에 걸쳐 조명한다.
■ 자연도감에서만 이들을 보게 되나
올해는 호랑이 해지만 양쯔강 이남의 무성한 밀림에선 더 이상 호랑이의 포효를 들을 수 없다. 밀림은 주인을 잃었고, 생태계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간 자행된 무분별한 밀렵은 한 때 이곳을 호령하던 남중국호랑이를 절멸로 몰아갔다. 포획된 호랑이는 부잣집 거실에 박제되거나, 호랑이연고 같은 상품으로 가공돼 형체도 없이 스러졌을 터다.
남중국호랑이는 현재 중국 내 18개 동물원에 47마리가 생존해 있지만 야생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은 남중국호랑이가 사실상 멸종했다고 추정한다.
'난쟁이 두꺼비'라 불리는 탄자니아의 키한시 두꺼비도 결국 야생에서 멸종됐다. 개발이 재앙을 불렀다. 키한시강 상류에 댐이 건설되면서 이 두꺼비가 살던 키한시협곡 주변으로 유입되던 물의 90%가 막혔다. 초목이 달라지고 곰팡이병이 생겼다. 댐 건설 전 키한시협곡 주변엔 키한시 두꺼비 1만 7,000여 마리가 서식했지만 끝내 멸종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위기는 더 넓게 번지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에 서식하는 인도 독수리는 농가에서 쓰는 약물 탓에 개체수의 99%가 사멸해 멸종 위급 상황이며, 서인도제도에 사는 안티구안 뱀도 1930년대 이래 멸종과 회생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 조사 결과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야생 호랑이는 약 3,200마리. 아무르(시베리아)와 벵갈 인도차이니즈 말라얀 수마트라의 5개 아종(亞種ㆍ종의 하위 구분)뿐이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호랑이를 '적색목록(Red List)'에 올렸다. 적색목록은 IUCN이 1994년부터 멸종위기라고 판단해 조사와 보호 활동을 펴오고 있는 생물의 리스트. 자이언트 판다와 코뿔소도 포함됐다. 판다는 중국 남서부 숲에 2,500마리도 채 안 남았고, 코뿔소는 인도 북부와 남아시아 지역의 열대 아열대 풀밭에 약 2,400마리가 가까스로 살아 있을 뿐이다.
생물다양성 감소는 재앙을 낳는다. 당장 생태계 위기는 물론, 장기적으로 천연자원이 줄고 자연재해가 늘며 식량과 에너지 부족 문제까지 야기한다. 결국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래서 국제 단체와 과학자들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 부었다. WWF과 중국 정부는 380만 에이커의 숲을 판다의 서식지로 보호해왔다. 미국에선 자국의 모든 호랑이 몸 안에 신상정보를 담은 칩을 심으려는 시도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조짐은 보이질 않는다. 야생 호랑이는 100년 전에 비해 자그마치 95%나 줄었고, 서식지는 10년 전의 40%도 안 된다. 지난 세기에만 발리와 자바 카스피안 호랑이 등 3개 아종이 멸종했다. 2000년 1만5,000여 종이던 적색목록은 2008년 4만4,837종으로 급격히 늘었다. 유네스코(UNESCO)는 알려진 모든 생물 종의 개체수와 서식지가 지난 30년 동안 평균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위기는 암처럼 느끼지 못하는 사이 커지고 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 개발에… 남획에… 그치지 않는 '아마존의 눈물'
과거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시베리아 호랑이는 1940년대에 이미 야생엔 40마리 미만밖에 안 남았었다. 주범은 바로 밀렵. 호랑이의 가죽과 뼈, 심지어 수염과 내장까지 약재나 의류 향수를 만드는데 쓰였다. 70년이나 지난 지금도 호랑이 밀렵과 거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연 멸종속도의 100배
판다와 코뿔소 역시 밀렵의 희생양이다. 판다의 뼈와 코뿔소의 뿔은 약용이나 조각용으로, 가죽은 옷이나 가죽제품 재료로 여전히 비싼 값에 팔린다. 특히 인도코뿔소는 밀렵꾼에게 취약하다. 여러 마리가 한 곳에 대변을 쌓아놓는 습성이 있어 이 냄새가 밀렵꾼에게 최상의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고래도 남획으로 연간 1,000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50년간 생물다양성이 특히 빠른 속도로 감소해온 원인을 바로 이 같은 무분별한 인간활동에서 찾는다.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밀렵뿐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켜 동식물의 먹이를 없애고 '묻지마 개발'로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동은 국제사회의 멸종위기종 보호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인간활동이 초래한 기후변화 역시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약 2만5,000마리 남은 북극곰이 대표적인 동물.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북극의 모든 야생종 가운데 북극곰이 극지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동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북극곰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기후변화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극지환경은 북극곰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사실 생물의 멸종은 지구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진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제로 지구는 생명체가 생겨난 이래 실제로 10여 차례의 멸종 시기를 겪었다. 문제는 속도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이 멸종이 일어나는 속도를 원래 자연상태보다 최소한 100배나 가속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제적 관심으로 멸종 모면도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호랑이를 적색목록에서 '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했다. 가까운 미래에 야생에서 매우 높은 멸종위기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얘기다. 적색목록의 등급은 멸종 우려 정도에 따라 총 9단계로 나뉜다. 그 중 위기와 '위급(Critically Endangered)' '취약(Vulnerable)'의 3가지를 가장 보호가 필요한 등급으로 본다. 2008년 IUCN의 적색목록에 오른 생물 4만4,837종 가운데 38%가 이들 등급에 속한다.
위기보다 높은 단계인 위급은 해당 생물이 야생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극심한 멸종위기를 맞고, 위기보다 낮은 취약은 몇 개월∼몇 년 안에 높은 멸종위기에 놓일 거라는 뜻이다. 판다는 위기, 코뿔소와 북극곰은 취약 등급으로 분류된다.
적색목록에 들어간 일부 생물은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다행히 멸종을 모면하기도 했다. 173개국 정부가 멸종위기종 국제거래 협약(CITES)을 맺어 호랑이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했고, 덕분에 시베리아 호랑이는 안정된 수를 유지하고 있다. 주로 러시아 동부에 살며, 몇몇은 중국 북동부와 북한 북부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과 중국 정부는 면적 380만 에이커의 숲을 판다 서식지로 보호하고 있으며, 1975년 한때 야생에 600마리밖에 안 남았던 코뿔소는 인도의 엄격한 보호 덕에 2002년부터 약 2,400마리로 유지되고 있다.
자료조차 없는 5,500종
하지만 대부분의 멸종위기종은 심각한 상황이다. 바다거북과 유인원은 적색목록의 위급 등급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바다거북은 바닷속에서 서식하다 알을 낳을 땐 해변으로 넘어오며 해양생태계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인간과 97% 유전적으로 동일한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고릴라 같은 유인원은 전염성 질병이 멸종위기를 더 가속화시킬 거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적색목록 가운데 5,500종 이상이 '자료 부족(Data Deficient)'과 '평가 불가(Not Evaluated)' 등급으로 분류돼 멸종위기인지 아닌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국내 상황은
'늑대 목도리, 여우 허리띠'. 젊은이들 사이에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필수품이다. 여기서 늑대는 남자친구, 여우는 여자친구를 뜻한다. 남녀의 상징으로 사랑 받아온 늑대와 여우를 이젠 한반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 늑대와 여우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Ⅰ급으로 지정돼 있다. 1968년 충북 음성에서 포획된 늑대는 현재 표본 상태로 동국대에 보관 중이다. 1970년대까지는 남한에서도 간혹 목격됐지만 지금은 북한의 북부 산악지대에 극소수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우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체 수가 급감한 뒤 지금은 극소수만 남아 있다고 추정될 뿐이다. 1978년 지리산에서 잡힌 한 마리는 경희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사체가 발견됐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Ⅰ급은 현재, Ⅱ급은 가까운 장래에 멸종될 위기에 처한 생물을 말한다. Ⅰ급은 호랑이 바다사자 반달가슴곰 두루미 구렁이 암매 등 50종, Ⅱ급은 물개와 담비 삵 가창오리 맹꽁이 기생꽃 등 171종으로 총 221종이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생물자원관은 2001년부터 매년 30∼40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에 대해 서식지와 개체수, 위협요인 등을 조사해왔다. 2006년부터는 포유류 7종과 파충류 1종, 어류 6종, 곤충류 3종, 조류 1종, 식물 36종은 복원대상 멸종위기종으로 선정해 체계적인 증식과 복원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선정되는 기준은 단순히 개체수만은 아니다. 동식물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할뿐더러 개체수의 감소 추세가 얼마나 빠른지, 서식지가 얼마나 제한적으로 분포하는지, 사회적으로 얼마나 관심을 받는지도 멸종 가능 여부를 판별하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해진 멸종위기종은 개체수와 구체적인 서식지를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공개 자체가 멸종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현경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총괄과 연구사는 "올해 전문가 회의를 거쳐 멸종위기종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IUCN 적색목록의 한국판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Ⅰ급과 Ⅱ급을 포획, 채취, 훼손하거나 죽게 하면 각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임소형기자
■ 생물다양성 위한 국제협력 '진화'
오는 10월이면 85개국 400여개 기관의 생물다양성 전문가들이 한국을 찾는다. 경기도 화성에서 열리는 제17차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GBIF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생물자원 정보를 발굴, 수집하고 공유하는 국제기구. 현재 95개국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은 2001년 17번째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GBIF를 비롯한 여러 단체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2001년 생긴 국제 비영리단체 그린팩트는 세계인 모두를 대상으로 건강과 환경에 관한 과학 지식을 전파한다. 이 같은 흐름은 생물다양성 문제가 한두 나라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걸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국제기구나 단체의 손길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미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국제사회는 공동의 '약속'으로 생물다양성을 지켜내기로 했다. 예전엔 특정 생물의 서식지가 있는 나라들끼리 보호 약속을 맺었다. 1973년 미국과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구소련이 체결한 국제북극곰보존협약이 한 예다.
이후 약속은 세계 전체로 확대됐다. 1992년 채택된 유엔환경계획(UNEP)의 생물다양성협약(CBD)은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물론 생물다양성으로 얻는 혜택의 공평한 배분까지 추구한다. 지금까지 189개국이 비준할 정도로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CBD는 사막화방지협약(UNCCS) 기후변화협약(FCCC)과 함께 3대 유엔 환경협약으로 불린다. 환경보존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협약도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한국은 250여 개의 국제 환경협약 가운데 50여 개에 가입했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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